빛과 사랑의 건축

은행과 산업 계통의 건축설계 외에 정림건축의 기반이 된 또 하나의 분야는 교회 건축이다. 지금까지 전국 각지에 설계해서 지은 교회만 100여 곳에 이르는데 하나하나 사연과 애정이 깃들지 않은 교회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교회는 역시 1979년에 지은 전주 서문교회이다. 

전북 정읍에 작은 개척교회 하나를 설계해준 적이 있었다. 그 인연으로 알게 된 서운석 목사님이 호남지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전주 서문교회로 부임 해오시면서 설립 80주년을 기념 하는 교회 설계를 의뢰해오셨다.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내려가 봤더니 예향 전주답게 교회 대지를 둘러싼 한옥촌의 정경이 무척 이나 아름다웠다. 저 전통적이고 단아한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는 교회를 지어야 겠구다.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뇌리를 스쳐갔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 온지 한 세기가 넘었건만 한국 교회가 우리 삶과 는 동떨어진, 낯설고 이질적인 세계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이좋게 옹기 종기 어깨를 맞대고 사는 나지막한 한옥촌 사람들에게 높은 종탑과 위용을 과시하는 듯한 우람한 건물 외관은 그 자체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위화감으로 먼저 다가 갔던 것은 아닐까. 

교회 건축이라면 당연히 더 크고 장엄하게 보이도록 설계해주기를 원 한다. 하지만 전주 서문교회를 다녀온 후 내 고민은 어떻게 하면 교회를 더 작게 보 이도록 할 수 있을까, 더 낮아보이도록 설계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주변의 한옥 촌과 조화를 이루면서 신자가 아닌 이웃주민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고즈넉하고 소박하고 겸손한 교회주민들의 일상과 괴리되지 않는, 만인의 쉼터가 되는 교회, 다행히도 그런 내 생각을 서운석 목사님이 받아주시고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셨다.

한편, 교회에는 공동체로서 사랑과 관심을 나누면서 더불어 믿음의 길 을 가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예배가 끝난 후에 차도 마시고, 서로간의 안부도 물 으면서 공동체의 일체감을 가질 수 있는 광장.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가 그렇듯 서 문 교회 역시 대지의 여유도, 경제적인 여력도 없는 형편이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로 젊은 두 디자이너와 함께 토 론도 수없이 하고 스케치도 무수히 많이 했다. 모두들 음악을 좋아해서 전축을 들 어놓고 밤을 새워 작업을 하곤 했는데, 교회 건축의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내고 있 다는 작가적 충족감 때문이었는지 무척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신나게 일을 토틀 있을 록 많이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많은 예배자들을 수용해야 하는 큰 건물을 최대한 작고 낮아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우리가 짜낸 안은 기본 공간을 만들되, 메인 공간에 주머니 공간을 이 달자는 것이었다. 우선 외관의 가장 큰 특징은, 단아한 주변의 주택들과 조화를 이루며 순응하도록 한국 건축의 특장점을 살린 것이다. 한옥이 주공간인 대청을 중심으로 사랑방, 안방, 마루 등으로 어우러져 하나의 주거공간을 만들 듯이 내부 공간도 예배당의 주공간과 주변의 작은 공간, 즉 크고 작은 주머니공간을 예배석과 찬양대석 등에 복합적으로 배치했다. 정식은 이 주머니 공간을 지금도 ‘예쁜 혹’ 이라고 부를 만큼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공동체 공간의 묘안은 노면보다 2미터 낮은 대지의 특성을 사용했다. 도로에서부터 계단을 이용해 직접 예배당으로 진입하게 하는 대신 원래 경문과 현관이 있어야 할 공간에 선큰광장을 배치한 것이다. 예배 후에 사람들이 한기반 에 몰려나와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아늑한 분위기의 광장은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공간으로 목사님과 신자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교회의 주요 부분이 되었다. 

외관도 중요하지만, 교회의 기능에 가장 충실해야 할 공간은 역시 대부 공간이다. 신자들은 교회를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곳으로 믿는다. 예배를 통해 하 나님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가장 엄숙해야 할 공간이다. 경건하고 진실된 신앙 심을 우러나오게 하며 제단으로 집중되는 신앙적 분위기를 최대한 고양시키기 위 해 교회 건축에서 가장 세심하게 다루어야 할 요소는 ‘빛’ 이다.

빛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이다. 빛이 있어 어둠의 사라지고, 빛이 있어 형태를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빛 속에는 인간의 언어로는 형용 되지 않는 수천 수만가지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빚어내는 창조주의 절대적 능력과 사람이 넘쳐흐른다. 이 오묘하고 신비한 빛을 어떻게 활용하고 표현할 것인 가 상부 수십 미터 높이의 타워, 하늘 창에서 내려비치는 강력한 빛, 은은한 사랑이 흘러넘치듯 측면 창문에서 스며드는 빛, 크고 작은 빛, 강하고 은은한 빛의 앙상블은 지금 봐도 탄성이 나올 정도로 환상적이다.

교회 설계에서 또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요소는 음향의 처리이 다. 찬양과 말씀이 예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름답게 설계된 내부공간 이라도 말씀이 명료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교회 건축으로서는 실패작이 되고 만 다. 수십 채의 주머니 공간들로 이루어진 서문교회는 그 자체로 소리들이 모아질 수밖에 없는 특이한 공간 형태를 갖고 있는데다가 좌석을 부정형의 부채꼴로 배 치함으로써 음향효과를 더욱 좋게 할 수 있었다.

그 해 나는 서문교회 설계로 교회 건축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었다는 평 가를 받으며 많은 작품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내 힘만으로 된 것이겠는 가? 교회 설계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건축가로서 나의 능력이란 게 얼마 나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냐 하는 것을 절감하곤 한다. 우주만물과 빛, 아름다운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솜씨 앞에서 나는 그저 그 세계를 흉내내 기에도 지혜가 모자라는 한낱 피조물일 뿐인 것이다.

‘빛과 사랑의 건축’ 

십 여년 전 회갑을 맞이해 발간했던 내 작품집의 제목이다. 내 작품세계에서 가장 크고 특별한 의미를 갖는,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건축이상이 집약되어 있 는 표현이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주신 빛과 사랑을 가장 아름답게 건축적으로 표현할 것인가? 주변 환경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하나님의 사랑이 이웃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전파되고 스며드는 친근감 있는 교회로 다가가게 할 것인가?

교회 설계, 그것은 내게 건축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분야이다. 하나님 이 주신 ‘건축’이라는 달란트를 가장 소용에 맞게 쓰는 신앙생활의 연장이자, 내 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섬김의 봉사인 것이다. 교회란 더 이상 외관의 크기나 모양 새의 화려함으로 경외받는 곳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닮은 교회,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조화되는 교회, 교회의 본래 목적과 역할에 가장 충실한 교회로 믿는 사람들이건 믿지 않는 사람들이건 품에 안기고 싶은 포용력과 사랑이 있는 건축물이 되어야 한다. 어두운 세상의 등불과 같이 세 상 사람들의 그늘진 삶에 소망과 사랑의 빛을 심어주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