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자와 컴퓨터

얼마 전, 회사에 출근을 했더니 직원이 책자 한 권을 갖다주었다. 현상설계에 당선되었다는 이응노 화백의 미술관 설계안이었다. 마치 완공된 건물의 사진을 보는 듯한 잘 표현된 투시도에서부터 단면도, 분석 자료 등이 세련된 디자인 감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책자는 설계안이라기보다는 실물사진에 가까웠다. 요즘은 어느 건축회사나 컴퓨터로 그려낸 완벽한 책자의 형태로 설계안을 제출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하겠지만, 책자 한 장 한 장을 넘겨보는 나는 감회가 새로웠다. 컴퓨터 기술이 이렇게까지 발전했구나……. 우리가 미국에서 국내 최초로 컴퓨터를 도입해온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꼭 22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내가 한창 작품활동을 하던 시기에는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유능한 친구가 꼬박 사흘을 매달려야 투시도 한 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스케치도 정성스럽게 깎은 연필로만 하던 시절이었다. 온전히 손과 머리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우고, 고치고 또 지워가며 원시적으로 작업에 몰두하던 그 시절엔 그 시절 나름대로의 열정이 있었다. 그런 향수를 자아내는 방법들이 다 사라져버리고, 컴퓨터만 들여다보며 하는 요즘의 작업은 방식뿐만 아니라 내용까지도 세대 차이를 절감하게 한다.

컴퓨터가 이렇게까지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게 되리라고는 건축회사로서는 최초로 컴퓨터를 들여올 때까지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당시 미국에는 우리가 교분을 갖고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회사들이 몇 군데 있었다. 또 미국의 건축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출신 건축가들과도 활발하게 교류를 하고 있었다. 그 회사들로 직원을 파견해 견학을 시키고 자료를 얻는 방식으로 세계 건축의 동향에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그 무렵 우리가 시급하게 벤치마킹해야 할 대상은 컴퓨터였다. 컴퓨터를 활용한 설계 작업을 하루빨리 상용하지 않으면 세계적으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우리는 무려 미화 25만 불을 지불하고 캐드CAD, Computer Aided Design라고 불리는 엄청나게 큰 컴퓨터를 들여왔다.

막상 컴퓨터를 들여놓긴 했지만 설계작업이 획기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컴퓨터의 기능이라는 것도 단순했고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전문가도 없어서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활용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단순한 기능만으로도 건축주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컴퓨터에 투시도를 그려놓고 마치 헬리콥터를 타고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여러 각도에서 잡은 뷰를 보여주면 건축주의 입에서는 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컴퓨터라는 첨단 기계를 갖춘, 한발 앞서나가는 회사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당시 정림건축에는 우리나라 건축에서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계발한 독보적인 인물로 주목받고 있는 조찬원 씨가 설계 직원으로 있었다. 그 당시 건축과 출신들은 컴퓨터를 좀 다루어보겠느냐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 마련인데 조찬원 씨는 적극적으로 도전해보고 싶어 했다. 그는 영어로 되어 있는 미국의 소프트웨어를 한글 버전으로 바꾸는 작업을 훌륭히 끝마쳐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카네기 메론에 가서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습니다.” 어느 날 그는 컴퓨터로 유명한 미국의 건축대학, 카네기 메론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기꺼이 3년 동안 그의 유학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공부를 마치고 복귀한 그는 한국형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에 전력을 쏟았다.

하지만 그 작업은 우리의 예상과 능력을 뛰어넘는, 엄청난 자본과 조직력이 뒷받침이 되지 않고서는 실현이 불가능한 매머드급 프로젝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 개발에 대한 투자를 멈출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사서 쓰는 것이 경제적이지, 우리가 만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현실적인 판단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 무렵에 IMF가 터지면서 조찬원 씨를 독립시킬 수밖에 없었다.

한국형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자 했던 원대한 꿈은 접어야 했지만, 한 발 앞선 컴퓨터의 도입은 정림건축이 한국 건축계 발전에 기여하는 또 하나의 선도적인 역할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우리 회사에 국한되지 않고 건축계 전체의 수준을 업그레이드 시켜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며 컴퓨터를 활용해 한국형 표준 디테일을 정립하고 그것을 책자로 발간해 일반에 공개한 것이다.

사실 그것은 이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가 힘들게 쌓아온 현장 경험의 모든 노하우를 축적한 대단히 값진 자료 정보였다. 설계 교과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특허에 속하는 고급 정보들을 서점가에 내놓기로 결단을 내린 것은 디테일을 공유함으로써 한국 건축의 선진화를 앞당기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다.

컴퓨터가 도입되기 전에는 모든 디테일을 일일이 트레이싱 페이퍼에다 복사를 해놓고 오려붙이는 수작업으로 만들어 썼다. 컴퓨터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원하는 디테일이 그려져서 나오니 효율성과 정확성 면에서뿐만 아니라, 건축계 전체에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희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숨은 뜻을 헤아리기에 당시 한국 건축계의 수준은 부끄러울 정도였다. 수작업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애써 만든 책자를 컴퓨터로 이용하지 않고, 복사를 해서 트레이싱 페이퍼에 붙여 쓰는 이전의 방식을 답습하는 데 활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까지 각오를 하고 공개를 한 것이었지만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후로도 컴퓨터는 사람이 손으로, 머리로 하던 방대한 양의 수작업을 해결해주기 위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책 한 권 분량으로 나오던 구조계산 서류도, 시방서도, 새로운 재료도, 새로운 공법도, 설계의 경향까지도 컴퓨터의 발전과 함께 한계 영역이 극복되고 지평이 확대되어왔다. 한 마디로 설계의 패러다임을 뒤흔들 정도의 엄청난 혁신이 컴퓨터의 도입과 함께 건축계에 불어닥친 셈이다.

그러한 신문명을 누구보다 먼저 도입하고 활용함으로써 정림건축이 성장하고 건축계 발전에 기여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나는 어느 누구도 귀 기울여 들어줄 리 없는 쓸쓸한 독백이 자꾸만 하고 싶어진다. 가령, 흠잡을 데 없이 너무도 깔끔하고 세련된 설계안 책자를 받아들게 될 때나 컴퓨터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한 젊은 직원들의 피곤에 지친 뒷모습을 보게 될 때 말이다.

컴퓨터의 등장은 설계 사무실의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드로잉 테이블이 사라지고, 그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던 T자와 삼각자, 연필과 물감들도 사라지고, 밤을 새워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그려나가던 장인들의 끈적끈적한 손 마디 사이에 박힌 굳은살도 사라지게 만들었다. 물론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뭔가 중요한 것이 빠진 것 같은 허전함이 자꾸만 밀려오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혼, 열정, 정성……, 어느덧 향수가 되어버린 그런 고전적인 가치들이 컴퓨터 세대와 조화를 이룰 방법은 없는 것일까? 신속하고 능숙한 기능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교차하는 고뇌의 소용돌이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작가정신! 옛날 나의 스승들이 그랬듯, 후배들에게 걸고 있는 기대가 큰 만큼 한 마디라도 더해주고 싶은 선배의 욕심은 끝이 없다.

잘된 포장 속에 치열한 작가정신이라는 알맹이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