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의 조화

현대 건축은 서양 건축이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며 개발 위주로 발전해온 서양 건축이 현대화된 모든 도시들을 조각하고 있다. 서울도 예외는 아니다. 마천루와 아파트 숲, 공공건물과 엔터테인먼트 시설,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건축물이 서양 건축 일색으로 한국 고유의 가옥 형태와 색채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건축, 설계라는 개념 자체가 서양에서 도입된 것이기 때문에 나 역시 일생을 서양 건축에 매달려온 사람이다. 하지만 나의 일관된 건축이념은 주변 환경을 해치지 않는 건축,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건축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자연 속에 고요히 숨 쉬는 건축. 자연의 순리를 과학적으로 이용하면서도 자연을 절대 거스르지 않는 소박함과 유순함이 스며 있는 건축.

그것은 서양 건축과는 출발점부터 다른, 한국 전통 건축의 아름다운 가치이며 내가 갖고 있는 신앙의 가르침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물은 하나하나 귀하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으며, 건축이란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위대한 자연을 겸손한 자세로 모방하는 것일 뿐이라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 한국 건축과 서양 건축의 이상적인 접목.

이 화두를 놓고 가장 많은 번민을 하며 열정을 쏟았던 작품은 1989년도에 설계한 청와대와 춘추관일 것이다.

“청와대 본관과 춘추관을 신축할 계획입니다. 정림건축에서 설계를 맡아주셨으면 하는데, 지금 바로 들어와 줄 수 있겠습니까?” 

어느 날 갑자기 청와대 비서실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내게 쉽지 않은 역사적 과제 하나를 불쑥 던져주었다.

사실 건축가로서 국가의 부름을 받아 정부를 상징하는 대통령 집무실을 설계할 기회를 얻는다는 것만큼 영광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설계 의뢰를 수락하는 순간에는 그저 감격스럽고 가슴 벅찰 따름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책임감과 중압감을 감내해야 하는 일인지 당시로썬 짐작도 하지 못했다.

청와대 구 본관은 일제 시대 경무대라고 부르던 일본 총독의 관저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대통령 집무실로 그냥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민족적 자존심으로서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나라의 위상을 드높여줄 청와대를 설계한다는 역사적인 사명감으로 나는 곧바로 설계에 착수했다.

청와대 비서실 주도로 청와대 신축 마스터플랜이 수립되고 각계 권위자들로 구성된 자문회의가 구성되었다. 수차례 회의 끝에 새로운 본관의 형태는 한국적인 전통건축미와 현대건축미가 조화를 이루어내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한국 전통양식을 현대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물의 설계이다 보니 작은 부분 하나하나까지도 세심하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전통공간수법, 구조의 짜임새, 한국 고유의 선형, 세부요소 등을 건물 기능에 맞게 현대적으로 재구성하여 표현한다는 것이 실로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전통 건축물에서 뛰어난 조형을 가진 건물들의 공간 구성과 비례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수많은 스케치와 모델링 작업, 배치 스터디, 도면 작업이 진행되었다. 계획에서부터 설계와 시공 감리까지 총 2년 8개월의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무엇 하나 쉽게 결정되는 일이 없고 수월하게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한 마디씩 의견을 내놓고 훈수를 두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그것을 조율하고 수용하느라 아주 애를 먹었다.

청와대 부지는 북악산을 주산으로 좌청룡인 낙산, 우백호인 인왕산, 안산인 남산을 두고 명당수인 청계천과 객수인 한강이 동에서 서로 흐르는 배산임수의 길한 형상을 하고 있다는, 풍수지리학상 최고의 길지로 꼽히는 땅이다. 그 자연 지세에 순응하는, 즉 자연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건물이 되도록 하는 것이 청와대 배치의 기본 개념이었다.

중앙에 2층 규모의 본채와 좌우에 단층 별채를 대칭으로 배치하여 조형적인 밸런스와 미적 조화를 시도했다. 그것은 한 채에 한 개의 기능을 가진 동棟으로 구성되는 전통건축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자, 건물의 위계와 권위를 표현하는 전통적인 방식이기도 했다. 

원래 한옥은 나무를 써야 제멋이 난다. 나무의 재질감에서 한옥 고유의 은은한 아름다움과 고풍스러움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와 같은 대규모 건물을 지을 나무를 구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화재의 위험까지 있어 결국 콘크리트로 대체를 해야 했는데, 차갑고 딱딱한 현대적 재료를 나무와 같이 부드러운 느낌으로 표현하고자 많은 정성을 기울였음에도 재료의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북악의 산세와 조화를 이룬 지붕과 추녀의 곡선미가 한옥의 멋을 살려준 것에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규모가 크지 않은 춘추관은 나무를 소재로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 앞에 작은 정자를 짓고 국민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신문고를 달아놓으니 프레스센터인 춘추관의 기능과 지붕들이 멋진 앙상블로 맞아떨어졌다.

또 한 가지 청와대 설계의 유감은 색깔을 전혀 쓸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여러 번 제안을 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신껏 해보라고 했다면 단청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디자인해 좀 더 밝고 진취적인 청와대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었을 텐데,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건축은 시대상황을 반영한다. 어떤 건축물이든 그 디자인에는 시간과 공간, 철학이 담겨 먼 훗날 그 시대를 증언하는 사료가 되는 것이다. 한국 고유의 건축적 의미를 재해석한 모티브와 디자인을 통해 한국 고유의 멋과 아름다움을 대내외적으로 자랑하고자 했던 청와대 설계에 대한 평가는 후대에 맡길 일이다. 다만 나는 청와대 본관과 춘추관, 그 이후에 지은 연수관까지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을 통해 남은 과제를 후배들에게 남겨줄 뿐이다. 

한국 전통 건축이 함축하고 있는 아름다운 가치와 현대적 개념의 서양 건축을 어떻게 접목시켜 한국 건축 발전에 이바지할 것인가? 

2005년 정림포럼의 주제도 ‘세계화하는 한국성 건축을 위해서’라고 정했지만, 이것은 최근 건축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문제이다. 무분별한 개발과 성장 위주로 서양을 쫓아가기에 급급했던 20세기를 뒤로 하고, 세계가 하나의 무대로 변모된 글로벌 시대에 한국 건축은 어떤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해나갈 것인가. 

그 해답은 우리 것의 재발견이다. 남과 다른 우리만의 것, 남의 나라에서는 볼 수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창적이고 고유한 것. 서양의 앞선 이론이나 기술은 계속 연구하고 따라가야 하겠지만, 표현과 내용에 있어서만큼은 이제 우리도 서양과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우리 고유의 가치와 문화를 이어나가야 한다.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세계에 알리는 문화코드로써의 건축을 지향하며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 그것이 후배 건축가들이 앞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세계화하는 진정한 한국성 건축’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