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상암구장

지구촌 사람들이 축구 경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의 축소판이기 때문은 아닐까. 소속이 있고, 각자의 위치와 역할이 있고, 목표가 있고, 규칙이 있고, 치고 나가야 할 순간이 있고, 숨죽이며 전열을 가다듬어야 할 때가 있고, 열 한 명의 선수들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혼연일체가 되어 움직이지 않으면 결코 승리를 낚아챌 수 없는 숨 막히는 승부전.

축구 경기에 몰입하다 보면 그것이 우리의 인생살이와도 무척 흡사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제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도 혼자 힘으로는 성취를 이루어낼 수 없고, 아무리 든든한 배경과 조건을 갖고 있어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승리의 달콤함을 맛볼 수 없다. 그것처럼 인생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상황들. 성공과 패배의 냉정한 규칙이 사각의 그라운드 안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축구 경기에 열광하고 또 매료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축구 경기가 흥미로운 또 하나의 이유는 언제든 이변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전력의 차이가 엄연히 있는 상태에서 강팀만 이기고 약팀은 늘 지기만 한다면 무슨 재미로 경기를 관람하겠는가. 강팀을 누르고 약팀이 승리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이변이라고 부르며 불굴의 투지와 혼신의 노력을 쏟은 약팀에 찬사와 박수를 보내게도 되는 것이다.

‘월드컵 최대 이변’이라고 세계의 언론들이 대서특필했던 2002년 한국의 월드컵 4강 진출도 마찬가지이다. 상대적 약팀인 우리나라가 축구 강국으로의 자존심이 서슬 퍼렇던 유럽의 강호들을 줄줄이 낙마시켰기 때문에 세계는 코리아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단순한 이변이라고만 말할 수 있겠는가?

서론이 좀 길어지기는 했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도 그것이다. 흔히 이변이라고 부르는 의외의 결과, 그것이 과연 단순한 우연이나 행운의 결과이겠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작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승패의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이변 뒤에 숨은 노력,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노력과 준비의 과정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현상공모에서 우리의 설계안이 당선되었을 때 그 역시 업계에서는 이변으로 받아들일 만한 사건이었다. 우리 자신부터 결과 발표를 듣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진짜로 우리가 당선될 수 있을 거라고는 꿈도 꾸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공모에 참가하기도 전부터 업계에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은 컨소시엄으로 턴키 프로젝트였는데, 국내 최고의 두 대기업이 설계와 시공회사로 나섰으니 게임은 해보나 마나 하다는 것이었다. 막강한 자본과 추진력을 갖춘 대기업과 상대해서 이긴다는 것은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우리의 설계안이 당선되었다고 하니 우리도 우리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고, 대기업도 뒤통수를 맞은 듯 얼떨떨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런 이변이 가능했을까. 결국은 자화자찬하는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겠지만 결론적으로는 두 가지 면에서 우리 설계안이 경쟁사보다 월등했다고 생각한다.

첫째, 디자인의 우수함이다. 우리 설계 팀의 디자인을 주도한 공간 출신의 류춘수 씨는 재능있는 건축가답게 아이디어 면에서 경쟁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독창적이었다. ‘작지만 풍요로운 소반’과 ‘희망을 띄우는 전통연’으로 대표되는 그의 설계 개념은 상당한 철학적 깊이와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희망과 성원을 담은 메시지를 더 높이 더 멀리 띄워 보낸다는 표면적 의미 외에도 국가를 상징하는 건축물인 만큼 국가의 이미지와 문화를 전 세계에 띄워 보내는, 더 나아가 21세기 인류의 희망을 띄워 보낸다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까지 담고 있는 것이었다. 피파FIFA가 정한 까다로운 월드컵경기장의 규정을 준수해내면서 그런 훌륭한 아이디어를 건축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냈다는 것은 류춘수 씨의 작가적 재능이 최고의 빛을 발한 것이라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는 짧은 기간 내에 가장 경제적인 단가로 공사를 완공하겠다는 정확한 데이터의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월드컵 경기가 열릴 때까지 시공 기간이 짧다는 것은 전국의 월드컵경기장이 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점이기도 했다.

설계안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일본의 요코하마 경기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설계를 끝내고 시공에 막 착수한 상태였다. 모든 것이 일본과 비교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설계안조차 확정하지 못했으니 초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공사 기간을 줄일 것인가? 어떻게 비용을 최소화할 것인가? 축구 경기장의 생명인 잔디와 배수 시설을 어떤 시스템으로 처리할 것이냐? 이 모든 것들을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설계에도 반영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는 최대 난제와 씨름까지 해야 했으니, 우리는 꼬박 5개월을 밤잠도 자지 못하면서 스터디와 분석작업, 회의에 회의를 거듭해야만 했다. 그런 모든 노력이 종합적으로 뒷받침이 되었기 때문에 대기업 쪽으로 거의 다 기울어졌던 프로젝트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내는 이변 연출이 가능했던 게 아니겠는가.

덧붙여 월드컵 이후 축구 경기장의 활용도 면에서 ‘월드컵 몰’이라는 대체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도 당선의 한 요인으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축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운동 경기장들이 안고 있는 ‘적자운영’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점으로부터 착안한 것이었다.

월드컵 몰의 조성은 월드컵경기장의 재정 자립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다양한 편의시설을 유치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새로운 문화 놀이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체 방안이었다. 월드컵 경기가 끝난 후 대형할인점에서 스포츠센터, 복합영상관, 예식장, 사우나, 음식점, 은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획을 우리가 맡아서 해주었는데, 시민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각종 테마 이벤트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인근 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공원으로 축구 경기장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어 버린 것이다. 아마도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은 재정적인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월드컵경기장이 아닐까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변의 가능성을 꿈꾼다. 그것이 없다면 무엇엔가 도전해보려는 의지도 의미가 없어져 버릴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축구 경기도, 비즈니스도, 인생살이도 이변이란 없다. 이변처럼 보이는 결과만 보고자 할 뿐이다.

경쟁상대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이 흘린 땀방울을 보려는 겸허한 마음의 눈을 가졌다면 그것은 이변이 아니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누구나 다 아는 뻔한 해답이지만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노력, 최선을 다한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가장 정직한 공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