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2005년 10월 28일,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이 드디어 문을 열었다. 연일 수만 명의 인파가 박물관을 찾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는 놀랍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다. 총 공사 기간 10년, 설계에서부터 완공에 이르기까지 꼬박 12년이 걸린 장기 프로젝트였으니 우리로서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새 국립중앙박물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관람 열기도 그에 못지않게 뜨거운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참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구나, 다시 한번 보람과 긍지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새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 6대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규모 면이나 내용 면에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대형 박물관이다. 한국 근현대사 위를 부유하며 수많은 상처를 안고 지내왔던 우리 문화유산이 광복 후 60년 만에 자신을 담을 온전한 그릇 하나를 갖게 된 것이다. 잃어버린 역사와 공간을 되찾고자 하는 오랜 국민적 열망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니 수많은 인파가 기대와 설렘에 들떠 박물관을 찾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국 건축사에서도 새 국립중앙박물관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유는 공정하고도 범세계적이었던 설계안 선정 과정에 있다. 다름 아닌, 유네스코 협력단체인 건축가 연맹U.I.A의 공인 하에 국제 건축설계 경기를 하여 당선된 국내 최초의 건물인 것이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보다 좋은 아이디어를 얻고자 시행한 이 국제공모에서 순수한 우리 힘으로 이뤄낸 정림건축의 작품이 당당히 1등으로 당선되었다는 것은 우리 건축계의 실력과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대단히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경복궁 복원을 위해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용산 가족공원 터에 새 국립중앙박물관을 짓겠다는 발표가 난 것은 1993년 11월,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 말기였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건축가협회로 자문을 구해왔다. ‘새 국립 중앙박물관의 현상설계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자문에 우리는 ‘편파 시비를 없애고 싶으면 공정하게 UIA의 주관하에 국제 건축설계 경기를 하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무모하고도 용감한 조언이기도 했다. 세계 유명 건축가들이 군침을 흘리며 달려들 만큼 세계적인 프로젝트를 국제 건축설계 경기로 했을 때 과연 국내 회사가 당선될 가능성이 얼마나 있겠느냐는 것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한 저명한 건축가가 설계 경기의 결과가 발표된 이후에,

“이런 국가적 프로젝트를 국제 건축설계 경기로 안을 받는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외국 심사위원들에 의해 당사국 건축가의 작품이 당선되기는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정림건축이 당선된 것은 상당히 다행스러운 결과이다.”

라고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조언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 설령 우리 안이 당선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국민의 세금을 들여 후대에 길이 남을 역사적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닌가! 가장 좋은 안이 실력으로 당선된다면 그것보다 더 바람직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2개월이라는 짧은 현상설계 기간이었지만 새 국립중앙박물관에 대한 세계 건축가들의 관심과 열기는 뜨거웠다. 총 46개국, 850명의 건축가가 참여하여 341개의 작품이 출품되었으며 그중에서 5개의 작품이 1차 입선으로 당선되었다.

최종 예선을 통과한 5개의 작품 중에서 우리 안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 작가이거나 외국 작가와 합작으로 낸 작품들이었다. 입선작에 한해서만 2차 설계 응모에 참가할 기회가 주어졌다. 꼬박 1년 동안 작품을 준비하여 제출했는데, 기술과 작품에 대한 엄정한 심사가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2년 동안의 땀과 노력의 결실이 마침내 1등 당선이라는 영광으로 돌아왔을 때, 그 기쁨과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고백하건대, 자존심 문제를 전혀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우리 문화유산을 담을 건물인데, 우리 역사와 고유한 전통,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외국 작가가 제출한 안으로 결정된다면 한국의 건축가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닌가! 말 그대로 국가적 체면도, 건축가의 위상도 살아나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던 셈이다.

‘한국성을 담은 세계적 건축의 지향’. 

이것은 새 국립중앙박물관에 요구된 건축 주제였다. 전통과 현대, 한국성과 세계성, 접목이 쉽지 않은 이 요소들을 어떻게 하나의 건물에 가장 조화롭게, 기능에 맞게 담아낼 것인가가 건축가가 풀어야 할 숙제였다. 설계의 핵심개념은 무엇보다 한국성의 표현이었다.

당선된 우리 안은 대지의 조건을 잘 이해하고, 한국의 전통적 자연과 건축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콘셉트로 건물을 적절히 배치한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집을 앉히는 전통방식에 따라 남향받이에 배산임수의 지세를 취함으로써 땅과 역사와의 깊은 관계를 맺고자 하였다. 또한 한국적 다이내믹을 느낄 수 있는 강한 매스의 조형, 성벽을 모티브로 하는 장대한 외벽, 장차 박물관 주변 일대가 뮤지엄 콤플렉스로 전환될 것에 대비해 건물 중앙에 열린 마당을 두어 전정과 후정이 통하도록 한 점 등도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열린 마당은 한옥의 대청마루를 재해석한 것으로 모두에게 개방된 삼라를 포용하는 축제와 공존의 공간이자 통일과 미래까지 염원하는 대화합의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외부 공간은 박물관의 구조를 체험하기 위해 진입하는 시퀀스sequence로 구성하였다. 그 중심에는 타원형의 거대한 연못인 거울못이 있다. 이는 전체 구도 속에서 배치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상징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고정된 풍경이 아니라 항상 움직이고 변화하는 풍경을 거울못을 통해 그려냄으로써 전체를 다각도적인 면에서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애초에 세웠던 이러한 설계의 개념들이 건축적으로 100퍼센트 실현된 것은 물론 아니다. 10년이라는 공사 기간 동안 담당 부서의 장관에서부터 기획단장까지 책임 주체의 잦은 인사이동은 숱한 정책의 혼선을 빚었다. 그때마다 시간이 지연되는 것은 물론이고, 처음에 세웠던 건축의 기본 개념마저 흔들리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움으로 남는 일은 ‘거울못’의 축소였다. ‘박물관은 물과 상극이다’라는 편견에서 비롯된 이 싸움은 길고도 지루했다. 거울못 중앙에 오작교를 놓자고 하는 분도 계셨고, 좀 더 자유로운 곡선의 못을 만들자고 하는 분도 계셨고, 거울못 측면에 팔각정의 정자를 짓자고 하던 분도 계셨다. 처음엔 없애겠다고 했다가 결국엔 줄여주는 쪽으로 합의가 되었는데, 그나마 우리가 의도한 개념과 비례의 조화를 지킬 수 있었던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하지만, 국제 건축설계 경기로 당선된 작품에 대해서 그와 같은 변경을 요구하는 것은 문화국가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이 현재의 모습으로 국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우리가 겪었던 크고 작은 어려움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사 막바지에 이르러 마감재 선정과 조경 등에 관련해서 또 몇 차례 소동과 소모적인 싸움들이 이어졌다. 때로는 우리의 의견을 끝까지 밀어붙이기도 했고, 또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담당부처의 의견을 일부 수용하는 선에서 마무리를 짓기도 했다.

사실 이런 예상치 못한 소동과 싸움들은 굵직굵직한 국책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어려움들이다.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 그만한 영예가 따라오지만 동시에 스트레스와 고뇌, 역사적 책임감과 인간적 갈등까지 모두 이겨낼 마음의 각오가 서 있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때로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허탈감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그것이 또한 한국의 건축가가 발 붙이고 서 있는 현실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새 국립중앙박물관이 성황리에 개관을 함으로써 우리의 할 일도 끝났다. 상처받았던 우리의 문화유산은 제 그릇을 찾았고, 새 국립중앙박물관은 역사의 보고로, 국민의 문화공간으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랑받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새 국립중앙박물관의 의미는 무엇보다 미래에 있다. 문화유산과 우리의 인식을 치유하는 교육과 체험의 장소이며, 그것들을 후대에 고스란히 전해줄 시간과 공간의 연결고리에 영원히 존재하게 될 것이다. 우리 문화의 상징이자, 한국의 문화와 건축을 알리는 매개체로 자리매김하게 될 새 국립중앙박물관의 개관을 다시 한번 자축하며, 박승홍 사장을 비롯하여 그동안 고생하고 애쓴 담당 건축가들의 노고에도 깊은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