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축 발전을 위한 제언

6·25 전란의 한가운데서 건축학과에 입학했을 때 주변에서는 건축이 무엇인지, 설계가 왜 필요한지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말이 대학이지 ‘하꼬방’이나 다름없던 흙바닥에서, 제대로 된 교재 한 권 없이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던 교수님들의 고충도 만만치 않으셨을 것이다. 내가 공부를 마치고 사회에 나왔을 때 건축가의 직업적 전망은 결코 밝은 것이 아니었다. 몇 군데 되지 않는 건축사무소에 가까스로 취업한다고 해도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되지 않았으니 건축가 역시 배고픈 예술가의 길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는 설계라는 개념이 없다. 노련한 토목수의 머릿속에서 어림짐작으로 구상되는 것이 설계이고, 그의 경험에 의해 목재로 기둥을 세우면 집의 틀이 완성되는 식이다. 설계에 대한 인식과 경험이 일천하니 건물의 설계만을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가욋돈의 지출처럼 여겨지는 것도 당연했다. 정림건축이 문을 열었던 1960년대 후반만 해도 설계비를 떼어먹히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것이 건축의 불모지, 한국의 건축가가 직면해 있던 현실이었다. 작품성은 논외로 하고 적은 돈으로 큰 건물을 짓고 싶어 하는 건축주의 욕심을 어떻게 만족시키면서 건축적인 필요조건들을 갖출 것인가, 그것이 건축가가 씨름해야 할 최대의 과제였다. 

50년 넘는 가까운 세월을 건축가로 활동해오면서 가장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건축과 설계 작업의 중요성에 대한 일반의 몰이해이다.

건축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 설계비에 인색한 건축주들.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는 건축의 질을 저하시키면서 한국 건축 발전을 더디게 해온 요인이 되었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건축물을 갖고자 한다면 건축주는 건축가의 전문적 제안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거기에 들어가는 제작비를 아껴서는 안 되는데 설계의 중요성, 적당한 설계비, 창작활동이자 문화로서의 건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건축주를 만나기란 쉽지가 않았다. 

서구의 경우, 오랜 건축적 전통만큼이나 설계비 책정이 합리적으로 정착되어 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경력 몇 년 차의 사람이 몇 명 투입되어 몇 시간을 일하므로 얼마가 필요하다는 것이 정확한 수치로 계산된다. 인력x시간으로 계산하여 대개 인건비 총계의 4배를 곱한 금액이 설계비로 계산된다. 거기에는 사무실 운영비용, 외주로 지출되는 비용, 세금, 최소한 남겨야 하는 이익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세계적 관례인데, 설계비로만 보자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건축 후진국이라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예전에는 수가기준요율이라는 것이 있었다. 설계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한 최소의 필요비용, 최저요율제라고 할 수 있는데, 그나마도 공정거래법에 위반된다고 하여 폐지된 이후로는 덤핑 경쟁을 막을 제도적 장치마저 없어져 버렸다.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한국의 건축적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축가의 자기반성과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끊임없는 기술향상과 디자인의 독창성을 통해 건축의 기술만이 아닌, 문화예술의 당당한 장르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건축주도 건축의 당당한 주체로 참여함으로써 시대적 사회적 필요를 함께 해결하는 건축이 되어야 한다. 국가와 사회도 건축가들이 보다 높은 자부심을 갖고 작품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건축을 당당한 문화의 한 장르로 받아들이는 인식과 그에 필요한 정책적 지원에 더 이상 인색해서는 안 된다. 

한국 건축이 세계 건축의 수준과 하루빨리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이 아직은 높다.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외국의 절반도 되지 않은 돈으로 초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소화해낸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한국의 건축가들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가 하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