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께

독도 영유권, 교과서 왜곡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일본에 관련해 무엇인가를 발언한다는 것이 아주 민감하고 불편한 사회적 분위기이다. 하지만 현실 정치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그들의 문화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본인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접한 것은 어린 시절, 대련에서였다.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살았는데, 그들의 철저한 공중도덕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으레 아침은 분주한 비질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데, 자기 집 앞만 냉큼 쓸고 들어가는 일본인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이웃들의 집 앞까지, 테라스 한 층을 다 청소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남을 배려하는 그 모습이 지금까지도 내게는 무척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가정교육도 내게는 놀라움이었다. 그것을 ‘히스께’라고 하는데, 몸 신身 옆에 아름다울 미美를 붙인 한자로 우리 말에도 없고 중국말에도 없는, 일본에만 있는 한자이다.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을 항상 아름답게 가꾸고 유지하라는 뜻이다. 

히스께에 관한 한, 일본의 어머니들은 지독하리만치 철저하고 엄격하다. 

히스께는 책임감을 강조한다. 아무리 어려도 자신이 어질러놓은 것은 반드시 자신의 힘으로 직접 정리하게 한다.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올 때도 옷을 털고 단정하게 매무새를 가다듬은 후에 들어와야 하고, 신발은 나가는 방향으로 가지런히 벗어 놓아야 한다.

다음으로 예의범절이다. 동네 사람을 만나면 어른이든 손아래이든 항상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절해야 한다. 일본의 온천지대로 관광을 가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에게도 절하는 것이 아주 생활이 되어 있다. 한 번 절하고 돌아서면 절하고, 뒤통수에 대고 또 절하고, 걸음을 떼지 못할 만큼 절이 그치지 않아서 부담스러울 정도이다. 그 인사 속에 진실한 마음이 있든 없든 몸에 배도록 가르친, 가정교육의 힘이다. 

일본의 어머니들은 아이가 친구들과 놀러 나갈 때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 약한 아이를 배려해야 한다.’는 다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한다. 공공의 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도 용납이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그 자리에서 따끔하게 혼을 내고 체벌을 하는 것이 일본 어머니들의 가정교육이다.

마지막으로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다. 어른이 한 말씀에 대해서는 일단 예, 라고 대답한다. 어른에게 절대 대들지 못하도록 가르친다. 물론 그렇게 가르치는 데는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소신이 부족한, 자기 생각과 주장이 없는 사람으로 성장할 우려도 있지만, 요즘같이 아이들을 버릇없게 키우는 우리나라 풍토를 보면 긍정적인 부분이 먼저 들어온다. 아이들이 곧 어른이고, 아이의 주장과 고집에 쩔쩔매며 끌려가는 부모들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창의력도 좋고 발표력도 좋지만,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인간으로 키우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한 자녀, 많아야 두 자녀. 자녀들을 공주처럼 왕자처럼 귀하게만 키우고 있는 젊은 부모들에게 무엇이 자녀의 장래를 위한 진정한 사랑과 교육인지 곰곰이 되짚어 볼 것을 주문하고 싶다. 이십 대, 삼십 대가 되도록 부모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똑똑한 바보로 키울 것인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바른 심성과 예의, 자기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는 책임감이 강한 아이로 키울 것인가? 너무 늦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우리 가정교육의 현주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