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권의 책,「나이 드는 것의 미덕」

우리나라 국민들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치닫고 있는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이미 2000년에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였고 2030년대에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생산의 하락, 국민연금의 재정 악화, 노인 인구 부양에 따른 사회적 제 부담의 증가 등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사회적 시스템의 재정비가 시급하게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노인들 자신에게 있다. 빈곤, 질병, 고독, 무위 등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겪게 될 고통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서부터 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노년을 맞이할 정신적 무장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더 멋진 삶을 즐기고 있는 미국의 전 대통령, 지미카터가 쓴 「나이 드는 것의 미덕」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은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흥미롭게 공감을 느끼며 읽은 책이다. 친구들에게도 이미 여러 권 선물로 사 주기도 했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포자기와 무기력에 빠져있던 친구들에게 신선한 자극과 활력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야기는 카터가 칠순을 맞이했을 무렵, 바바라 월터스 쇼에 출연했을 때의 일화로부터 시작된다. 바바라가 물었다. “당신은 흥미진진하고 도전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중 언제가 최고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잠시 후 그는 확신을 갖고 대답한다. “지금인 것 같군요.” 이 의외의 대답이 내 눈길을 잡아끌었음은 물론이다. 나보다 한 살이 많은 카터, 2001년에 ‘사랑의 집짓기’ 행사로 내한한 그를 직접 만나보기도 했지만,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기에 그는 칠십의 나이에 최고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카터는 ‘나이 드는 것의 미덕’에 대해 두 가지 정의를 내리고 있다. 하나는 ‘특별한 은혜’이고, 다른 하나는 ‘존경할 만한 품성’이다. 다시 말해 나이 드는 것의 미덕이란, 나이 들어가면서 받게 될 축복에 감사하는 일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인생의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찾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는 나이 드는 것의 두려움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토로한다. 경제력을 상실하는 것보다 더 큰 아픔은 자식들에 대해 예전과 같은 권위와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노년을 순리대로 받아들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은퇴 후 그의 행복한 노후 설계는 시작되는데, 건강을 지키는 법에서부터 다른 사람과 만족스러운 관계 맺기,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 특히 중요한 것은 작고 단순한 일이어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만의 일을 찾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카터. 그는 소박한 진실, 곧 행복과 평화, 만족, 모든 형태의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나이에 상관없이 진정한 미덕으로 향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마지막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2000년 경영 일선에서 한 걸음 물러난 이후, 보다 가치 있고 보람 있는 노후의 할 일을 찾고 있던 나에게 이 책과의 만남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속 깊은 친구와 조우한 것만큼 반갑고 감동적인 일이었다. 이러저러한 책임감에서 모두 벗어나 나 자신을 위해 인생의 마지막을 설계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 노년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은혜’이다. 또한 자신이 선택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값지고 행복하게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길이 또 어디 있겠는가.

나는 아내와 함께 몇 년을 심사숙고한 끝에 우리 인생의 남은 열정을 바칠 일로 어린이 교육을 위하여 재단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아내는 건축가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조연이었지만, 어린이 교육사업에서는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연으로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사명을 행복하고 아름답게 수행해낼 것이다. 

아내와 함께 욕심 없이 걷는 길, 서로를 멋지고 아름답게 쳐다봐주면서 꿈을 이루어 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행복. 

카터의 말처럼 나이 든다는 것은 ‘꽤 괜찮은 일’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