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에서 영원으로 김경수

1. 사회와 시대의 요구로부터

건축가가 건축설계작업을 통해서 사회의 제 계층과 맺게 되는 관계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이제 창립 20주년을 맞게 되는 정림건축과 같이 다량의 대규모 과제를 수행해 나가는 설계 조직의 경우 그러한 관계는 광범위한 인간관계를 형성시키게 되며 그러한 관계망 속에서 이 집단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기대의 수준이 결정된다. 건축설계를 의뢰해 오는 기업인, 행정가 등 모든 건축주들은 일단 정림에 해온 20년의 자취들을 통해 자신들의 건축적 꿈을 그려 보게 된다. 그런 과정속에서 발주자측의 기대수준에 대한 건축가의 대응이 기여하는 결과로 이어질 때 건축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점진적으로 개선의 여지를 보여주게 된다. 정림건축이 건축계에 안겨주고 있는 가장 큰 공헌 중의 하나는 바로 그러한 온건하고 합리적인 건축가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우선 시대의 요구에, 그리고 건축주의 필요에 부응하는 일이야말로 건축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2. 변신과 발전의 노력

그러나 실상 그 사회의 요구라는 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다. 그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해갈 수 있는가 여부에 따라 하나의 건축조직은 존속과 발전을 계속할 수 있는 능력을 시험 받게 된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경제적 여건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조직으로서의 정림건축은 경영능력에서나 조직적인 설계작업의 진행에 있어서나 가히 모범적인 건축집단으로서의 이미지를 굳혀 왔다. 특히 설계과제가 대형화 되고 복잡해져 온 1980년 이후의 정림건축의 변신은 괄목할 만하다. 조형의 스타로서 젊은 건축인들의 우상으로 군림해왔던 몇몇 건축가들의 전유물처럼 되어 왔던 과감한 조형적 시도들이 최근에 두드러지기 시작하고 있다. 그것은 그간의 합리적인 문제 해결의 기본기를 철저하게 체득한 바탕위에서의 작업이라는 점에서 더욱 긍정적인 반응을 가능케 한다. 사회의 요구에 겸허하게 대응해온 건축적 절제의 의미는, 80년대의 후반기를 맞으면서 이제 수준작의 저변화 단계를 넘어서는 화려한 개화의 발판이었다는 것으로 재해석된다.

3. 경향과 의미

그러한 개화의 전기를 맞고 있는 정림건축의 건축적 경향들을 정리함에 있어서 기능이나, 기술 등 계량가능한 것들에 대한 판단은 일단 미적인 이해라는 줄거리 속에 종합되어야 하는 것으로서 부분적인 지적에 그치게 될 것이다. 또한 답사를 거친 40여개의 작품들을 개별적으로 분석하는 일 보다는 전체적인 경향을 중심으로 필요한 특성들을 언급해 나가는 것이 논의를 보다 효율적으로 해줄 것으로 보인다.

정림건축의 건축적 경향들은 크게 세 갈래의 흐름으로 파악된다. 첫째, 실용주의적 기업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안정되고 품위있는 외관을 보여주고 있는 합리주의적 경향이다. 둘째, 기하학적이고 원초적인 형태요소들을 중심으로 강렬한 인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경향으로 특히 ’80년대 들어서 더욱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셋째로는 유기적인 조형언어의 구사에 의한 낭만적 경향으로 이 속에서는 다시 조각적 조형수법과 문맥에 바탕을 둔 것으로 나위어진다. 우선 각 경향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서 받아들여지는가를 논하고 주변 환경과 건축사의 맥락 속에 어떻게 놓여질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리고 각각의 흐름 속에서 다시 개별적 특성을 나타내는 사례들을 들어보고자 한다.

3-1. 합리주의적 경향
양식상의 명칭을 붙이기는 어려우나 첫번째 것은 신사의 양식(gentleman style) 이라고 불러보면 그 성격이 연상될 것이다. 정림건축의 작업의 대종을 이루어 왔던 은행이나 사무소 등 업무용 건축에 주로 드러난다. 도시의 문맥속에서 주변의 건물들에 비해 중후하면서도 간결한 모습으로 눈에 뜨인다. 대부분 좌우대칭적인 고층부분의 윤곽을 굵게 둘러 무게를 주는 대신 윤곽의 안쪽면은 커튼윌이나 수평띠창으로 경쾌하게 처리함으로써 그 무게를 덜고 저층부분이 있는 경우는 고층부와는 엇갈리게 배치하여 외부공간에 변화를 주고 있다. 외환은행본점을 비롯하여 사학연금회관, 코리아헤랄드 사옥, 상공회의소, 대구은행본점 등 그 사례의 규모에 있어서 정림의 양식이라고 불러도 좋을 전형을 만들어 내었다.

무게가 있으나 위협적이지 않고 명쾌하나 지나치게 세련되지는 않아 보여 친밀감을 줄 수 있는 작품들이 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도시 신사들의 사는 모습일 것이다. 자신의 품위를 지키되 타인에게 위압감이나 당황을 주지 않는 선에서의 절제, 그러한 생활자세가 이 건물들에서 전해진다.

우리의 경제적 규모가 그리 크지 않던 시절에는 물론 품위 이전에 실용적 요구를 수용하는 선에서 자제를 해왔고 그것이 정림의 주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소위 탈근대주의라고 불리는 표피요소의 도입 (삼윤빌딩, 증권회관) 이나 대각방향의 엇물림에 의한 평면구성 (한국수출입은행), 수평띠의 반복으로 표피를 강조하는 수법 (삼윤빌딩), 수직방향의 평면을 뒤로 물림으로써 입체의 표현성을 두드러지게 하는 수법 (한국투자신탁 동래지점, 이화여대 과학관) 등 보다 최근의 작업에서는 앞의 절제된 양식으로부터의 이탈을 시도하고 있다. 신사적 매너의 이면에 있던 건축의 자기표현의 욕구가 노출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성공의 가능성은 역시 재현보다는 추상의 경향에서 더 높은 것으로 보이지만 (수출입은행) 무표정한 건물들의 밀림속에서 의미요소로 도입될 수 있는 건축적 자기지시의 수법도 그 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다. (삼윤빌딩)

3-2. 기하학적 형식과 공간
주로 공공성이 강한 종류의 건물에서 드러나고 있는 두번째의 기하학적 경향에서는 원기둥이나 원통형 입체의 수직성을 강조하여 강렬한 힘을 보여주고 있다. (창원시청사, 창원새마을회관, MBC 여의도 스튜디오, 상무체육관, 단국대 천안캠퍼스 학생회관 등) 더욱 활기가 넘치는 건축적 경험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한국의 건축에 있어 곡선의 사용은 르코르뷔제 후기의 영향을 강하게 보여주었던 김중업과 김수근의 몇몇 사례외에는 극히 기피되어온 것이었다. 그것이 건축계 전반에 차급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들어와서이며 한편으로는 근대건축의 절제경향의 퇴조와 연관되어 있다.) 정림의 경우 부정형의 곡면은 극히 제한적으로 나타난다. (한국개발연구원 구제 연수관).

그러한 기하학적 형식들은 건축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가?
건축가의 말대로 구조나 시공의 측면에서도 부정형의 곡선보다는 기하학적인 정형의 곡선이 합리적일 것이다. 각지점의 좌표가 체계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인지를 쉽게 해주면 또한 역학적인 합리성도 갖는다. 그러나 그러한 실제적인 정당화와는 별도의 시각적인 함축을 읽어볼 수가 있다. 원과 정사각형, 또는 정육면체나 피라밋, 원추와 구 등의 ‘원초적’인 형상들은 완결된 형태로서 실상 극히 이기적인 정신의 산물이다. 세계의 근본질서를 기하학적으로 해석해냈던 서구 고전주의 건축의 바탕이 되었던 요소들이 바로 그것이며 근대건축운동의 선구자였던 르코르뷔제도 그로부터 출발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기능주의와 고전주의를 합리주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일단 하나의 양식으로 정착되기까지 그러한 형식들은 기존의 기능주의적 논리로 정당화된다. 내부의 평면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라는 점에서 자의적 형식이 될 위험을 피하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형태요소보다도 먼저 공간개념으로부터 출발함으로써 더 유의미한 것으로 파악된다. 기하학적 형식을 가장 강력하게 구현시킨 단국대 천안캠퍼스 학생회관은 바로 그렇게 원초적인 형태들의 내부와 외부에 미적 공간이라는 장치들을 동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대지형상의 불리함을 극복해낸다는 차원을 넘어서 형태와 공간이 한데 어울러지는 축제의 마당을 만들어 놓고 있다.

건축에서의 기하하적 형식들이 만들어내는 재미와 활력은 그것이 지극히 서구적인 뿌리를 가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원초성의 암시를 던져주고 있다.

3-3. 유기적 건축
세번째의 유기적 양식은 앞서 언급했듯이 우선 조각적 경향의 작품들 (모토로라새마을회관, 정동제일감리교회, 한국금융연수원, 전주서문교회, 부산삼일교회, 이화여대 수련관 등) 을 들 수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전주서문교회라고 할 수 있다. 조각적 형태의 구성에 있어서는 그 형태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외관에 드러나면서 전체형식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어휘상의 일관성이 기본이 된다. 예를 들어 선과 면과 덩어리라는 형태 각각이 갖는 성격들을 유지시키면서, 특히 서로 다른 형태요소들이 만날 때 그 매듭부분의 처리에서 전체의 통일성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고의적인 모순을 도입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그때는 그러한 일탈의 의도와 의미가 명확히 전체 형태개념의 주요한 부분이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게 된다. 매너리스트적인 왜곡과 과장은 그러한 전제하에서 의의를 얻게 될 것이다. (<건축과 환경> 지 8410, p.88-92 참조.)

유기적인 양식 중 문맥주의라고 부를만한 또 하나의 경향은 기존의 건축환경이 갖고 있는 형식상의 규칙성들을 받아들이면서 그러한 제약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언어, 또는 문법으로 역전시켜 성공한 사례들이 되고 있다. 주어진 어휘를 문법으로 승화시켜낸 예 (정동제일감리교회, 창원새마을회관, 이화여대 도서관 및 법정대학관) 들을 들 수 있다. 특히 후자의 두 건물은 정림건축의 앞으로의 작업에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는 문제작이 되고 있다. 무로부터 창조를 신봉하는 전위들의 입장에서는 한정된 것으로 느껴질 것이지만 건축의 창조에 있어서 ‘주어진 것’이란 미래의 신세계에 대한 전망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고 또한 가능성을 지닌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제약이 있을 때에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역설이 가장 잘 드러나고 있는 예이다.

4. 문법 또는 규칙: 건축언어의 확립을 향하여
예술사에서의 끊임없는 변천의 원동력이, 스스로 제기한 문제에 해답을 구해가는 과정속에 있듯이 건축형식의 문제도 영원히 계속되는 질문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건축에 있어서는 단지 형식의 문제만으로 지속되기 보다는 끊임없이 진보해가는 기술의 충격과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내용적 측면에 대한 확인이, 항상 미적인 문제에 규제이념으로서 작용하게 된다. 형식을 위한 형식이 가장 덧없는 것으로 판단될 수도 있는 분야가 바로 건축인 것이다.

혹자는 인공적 산물인 건축이 자연 그 자체로 받아들여질 경도의 자연스러움을 형식에 부여하는 것이 건축가에게 부여되어 왔던 과제라고도 한다. 어찌 보면 건축에 있어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건축 자체의 무화가 아닌가 생각될 수도 있다. 침묵을 지킴으로써 건축은 그 효용을 다하면서도 자신을 비운 그릇으로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단국대 퇴계기념 도서관의 격자체계의 입면구성은 그러한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물론 그것은 하나의 특수해로서의 가능성일 뿐 일반적 원리로서 제시될 수는 없다.

기술의 산물인 상품은 그 도구성에 의해서만 우리와 관계한다. 그와는 달리 건축은 존재 그 자체로써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예술로서의 부분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건축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의 탐구의 대상인 것이다. 그렇게 열려 있는 건축적 문제의 세계를 헤쳐나가는 건축가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언어를 갖는 것이다. 건축의 조형언어도 소통되기 위해서는 규칙을 가져야한다. 또 그 규칙이 보편성을 갖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으로서 주어진 것을 찾아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밖에 없다. 이 경우에 과거의 건축은 관념의 수준에서 세계관을 알아보기 위한 대상이면서 동시에 보다 구체적인 공간의 연결이나 상세의 처리 속에서 그러한 관점을 읽어내고 오늘의 작업에 끌어올 수 있는 자원이 된다.

그러한 보수적 대응이 부적절한 경우에는 물론 과감하게 현재 그 자체와 미래에 눈을 돌려야 한다. 하나의 방법으로서 고의적인 극단화의 방법을 취해가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미 정림규모의 설계집단에서 특정한 하나의 양식적 경향을 고수하는 것은 합리적일 수 없다. 지금까지의 다양한 접근방식들을 더욱 능숙하게 구사하면서 각각의 작품이 갖게 될 형식의 일관성 또는 통일성을 상세의 수준까지 확보해 나가는 일만이 남아 있다고 할 것이다. 이대유치원과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보이는 재미있는 형식상의 시도들이 의미있는 걸작의 지위를 얻어낼 수 있는 가능성은 어떻게 그러한 자기규제의 규칙을 찾아내는가에 달려 있다.

정림건축은 분명 국내에서 손꼽히는, 고급건축을 산출해 내고 있는 탁월한 설계집단이다. 특정한 관점에 따라 정림의 건축적 성과들에 무심할 수 있겠지만 지난 20년간의 성과는 한국건축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 정림의 저력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최근의 일로 보이며 앞으로 어떻게 변신해 갈 것인지를 가늠해 볼 도리는 없다. 다만 갈수록 좁아지는 세계속의 한국건축을 대변할 수 있는 집단으로서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정림으로서는 그들이 건축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아 위와 같은 과제들에 대한 역할에 기대가 모아진다고 하겠다. 이는 한국의 건축계가 모두 함께 지고 있는 이 시대의 과제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바로 현재의 정림이 풀어가야 할 과제인 것이다.

(명지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자료 및 정보 출처

《정림건축 1967-1987》정림 20주년 작품집, 1987, 223~2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