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과 ‘기술’ 사이 김광현(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이 글은 비평문이 아니다. 흔히 생각하듯이 글로 가득 찬 부분이 잡지의 특집 앞부분을 장식하면, 그것을 비평가의 비평문으로 여기는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은 한 사람의 건축가로서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를 정림건축을 통해 보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내가 정림건축의 몇몇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은 바는 구체적인 사항에 대한 비판에 있지 않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정림건축에 대해 제3자 입장에서 한 마디 던지고 사라져도 괜찮을 말을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비록 사전에 무엇을 쓰리라고 정하지 않고 써 내려갔으나, 결국 이 글은 ‘나’ 자신의 건축을 위한 것이므로, 이 생각이 정림건축을 위한 작은 의견으로 받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정림건축을 자주 드나든 편이 전혀 못된다. 굳이 구체적인 관계가 있다면, 정림건축의 호의로 서울대 화학공정신기술연구소 지명설계를 위해 계획안을 작성한 바 있으며, 한 차례 사내에서 특강 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학과 일로 김정철, 김정식 선생님을 두 차례 찾아뵌 적이 있으며, 그 외의 일로 사무소를 찾아간 것은 모두 합해야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그 대신 서울시립대에서 가르쳤던 많은 제자가 정림건축의 주요 멤버로 건축을 배우고 실천했으며, 그곳에서 배운 건축의 길을 나름대로 해석하며 작품을 만들어 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까이 지내는 능력 있는 많은 후배들이 정림건축에서 핵심 멤버로 일했으며, 그렇게 일하고 있다. 또한 지금도 가깝게 지내며 모르는 것을 묻는 건축가 중에는 정림건축 출신들이 상당히 많다. 또 가까이는 정림건축에서 다년간 근무했던 제자가 내 연구실의 훌륭한 연구자로 있으며, 사랑하는 제자가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새로운 건축의 길을 걷고 있다. 이렇듯 나는 먼저 정림건축을 조직적인 대규모 건축설계사무소라고 생각하기 보다, 제자와 후배, 그리고 많은 선배들을 배출한 훌륭한 ‘건축학교’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정림건축은 가까이하지 못한 듯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선배와 후배, 제자라는 폭넓은 인간관계 속에서 늘 친숙한 설계집단이기도 하다. 때문에 여기에서 정림건축의 수많은 작업을 본격적으로 꿰뚫어 보는 일은 나의 범위를 넘는 것이다.

다만 김정철, 김정식 선생님으로부터 올해 신입사원으로 갓들어간 제자 조은오와 전신영에 이르기까지, 부담없이 친숙하게 찾아가는 편한 관계에서만 정림건축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정림건축은 그들이 지냈던 세 가지 다른 사옥 건물처럼 세 가지 다른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 처음에는 5층짜리 사각형 입체에 순수 기능적인 창을 가진 건물에서, 그러다가 삼각형 프리즘 형태와 완결된 지붕이 덮인 증축 건물에서, 다시 최근에 완공된 신사옥에서 정림의 건축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세 건물의 변화는 정림건축이 이제까지 추구해 왔고,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림건축의 작품을 이미지로 말한다면 그것은 아마 견실함과 합리성일 것이다. 견실함은 정석을 중시하고 무리한 형태로 눈을 끌고자 하지 않는 것이며, 합리성이란 탄탄한 기술력과 조직력으로 효율적인 공간과 구조와 시스템을 구사하는 능력을 말함이다. 그런 이유에서인가 정림건축이 도시 안에 만든 대부분의 건축은 시간이 지나도 그 모습에 변함이 없고, 국내 어떤 설계사무소보다 많이 다룬 고층 사무소 건축도 유행과는 무관하게 건실하게 우뚝 서 있다. 리차드 세넷(Richard Sennett)이 서구문명에 나타난 도시를 인간의 육체에 대한 관념을 중심으로 설명한 |살과 돌|Flesh and Stone(문학과학사)이라는 책이 있다. 그 서문 첫 줄에 적어 놓았듯이, |살과 돌|이란 “육체의 경험으로 풀어본 도시의 역사”라는 것이다. ‘살’이란 인간에 대한 고유한 가치가 어떻게 이해되었는가를 나타내는 말이며, ‘돌’은 인간이 만든 도시를 말한다고 한다. 이런 표현을 빌어 정림건축의 작품을 일별하여 말한다면, 아마도 ‘돌과 유리’가 될 것이다.

견실함과 합리성이라는 두 가지 이미지는 실제로 정림건축 안에서 돌과 유리로 대표되는 조형으로 변형되어 나타났다. 견고함, 역사성, 문맥, 상징, 유지 등과 같은 불변, 고정, 인간과 같은 측면을 표현하는 ‘돌’과, 합리성, 가벼움, 현대성, 기술, 투명과 같은 변화, 물질, 시대와 같은 측면을 대표하는 ‘유리’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이질적인 재료이고 의미의 전달도 이질적인데, 정림건축의 대표작 안에서는 기묘하게 무리 없이 계속 공존해 왔다.

단대 퇴계기념 중앙도서관
단대 율곡기념 도서관

돌과 유리의 공존은 기념적 건물일 때 더욱 잘 나타난다. 단국대학교 퇴계기념 중앙도서관(1983)과, 같은 대학교의 율곡기념 도서관(1988)은 비슷한 구성에 비슷한 재료가 사용되어 있다. 러스티케이션(Rustication)의 기단부와 경쾌한 상층부라는 두 가지 요소가 대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퇴계와 율곡을 잇는 공통성 때문이 아니었겠으나, 거친 돌과 매끈한 돌, 그리고 두 가지 요소를 이어주는 유리라는 소재가 외관상으로는 두드러진 두 건물의 공통적이 요소이다.

그런데 퇴계기념 중앙도서관의 상층부는 흔히 생각하기로는 유리창이어야 할 곳에 돌이 와 있고, 돌의 프레임이어야 할 곳이 유리가 와 있지만, 율곡기념 도서관은 유리와 돌 프레임이 작은 사무소 건축처럼 위에 얹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내부에서 돌은 유리면과 공존한다. 내부에 사용된 돌은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어서, 돌의 물성이 마치 금속관을 대신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율곡기념 도서관에서는 돌이 금속관처럼 사이에 두고 띠를 이루고 있으며, 이것으로 천창의 가벼움을 더하게 되어 있다.

평면의 특징은 당연히 엄격한 대칭이다. 대칭형은 돌로 강조되고, 중심부는 다시 격자형의 유리로 강조된다. 그렇지만 강력한 평면 구성에 비하면, 내부는 경쾌함을, 금속을, 단정한 장식을 지향하려는 듯이 보인다. 퇴계기념 중앙도서관의 저층부 디테일에서도 유리는 러스티케이션(Rustication) 안에 둘러싸인 채 나타나고, 다시 유리창은 유리 블록으로 원통형을 만들어낸다. 이때 유리 블록은 유리와 돌의 중간형으로 사용되었다. 이에 비해 율곡기념 도서관의 저층부에서는 러스티케이션(Rustication)은 유리와 철골이 직접 만난다. 그리고 매끈하게 다듬어진 돌이 유리면과 함께 러스티케이션을 분절하면서, 유리면과 유리면 사이의 기둥 형상을 만들어낸다.

형태를 이렇게 만들어가는 과정을 요약하면 대립적인 것이 공존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중간의 전이 요소 없이 대립적인 것이 ‘직접’ 연결되어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중간의 전이요소란 디테일에 관한 설명이다. 그러나 이것을 확대해 본다면 이것은 ‘돌과 유리’이다. 외부는 강하고 내부는 경쾌하고자 하며, 매끈한 돌은 유리에 접근하려 하고, 돌은 금속에 접근하고자 한다. 마치 율곡 건물에서 러스티케이션 사이의 잔다듬한 돌이 유리의 보조자이듯이, 정림건축에서 돌은 언제나 유리와 동반자이다.

알류미늄 복합 패널로 마감한 정보통신 계통의 건물을 보면, 패널이 만나 이루는 전체 형태는 관을 붙여 놓은 듯이 견고하게 보인다. 어떤 경우에는 알루미늄 패널이 마치 돌을 사용하듯이 견고하게 이어져 있어서, 전체 형태가 매스를 이루는가 하면, 어떤 경우에는 패널에 장식을 가하여 금속 패널이 석재판을 사용하듯이 표현되어 있다. 이때에도 형태는 면으로 분절된 경쾌한 구성이 아니라, 돌로 만들어진 매스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간단한 예시만으로는 속단에 지나지 않겠으나, 정림건축의 형태는 전체적으로 강한 매스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돌과 유리와 금속이라는 세 가지 주요 재료로 변형하고 있는 예가 많이 발전된다.

강한 매스는 강한 다각형 평면과 상통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만들어지 평면 중에서는 다각형, 원형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상당히 많이 발견된다. 다각형이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에서는 완결된 요소의 병치를 뜻하기도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일종의 상징성, 구심력, 기능의 집약회라는 것으로 이해된 것이다.

다각형 형상은 자유로운 평면 한가운데를 장악하여 강한 중심 공간을 형성하는데 많이 사용되면서, 평면상의 다각형은 건물 전체의 정리된 매스로 분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림건축의 한 가지 중요한 방향인 기술지향적인 이미지와는 사뭇 반대편에 선 것이다.

기독교 순교자 100주년 기념관
기독교 순교자 100주년 기념관 내부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 순교자기념관은 노출 콘크리트로 된 담백한 건물이다. 광장에 도착하여 입구를 향하는 시선에 대해 건물은 단층을 이루며 약간씩 뒤로 물러나 있다. 입구 좌우의 계단, 2층 홀 정면을 장식하는 열주, 3층의 원형 홀과 양쪽의 사각형 전시실 등은 모두 좌우로 펼쳐지면서 조금씩 뒤로 물러나 있다. 지형 조건 때문이다. 그리고 엄격한 좌우 대칭의 구성으로 순교자의 숭고한 신앙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건물 전체는 기단 위에 세 개의 건물이 중첩해 보이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세 개의 건물이 아니라, 세 개의 건물로 보이도록 요소를 분절해 만들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2층의 주랑은 실제의 주랑이라기보다는 기단 위 바로 위에 있는 형태를 가볍게 보이기 위한 타협적인 수정이다. 3층의 홀과 전시장을 잇는 공간을 약간 오목하게 만든 것도 실은 중심적 형태를 얻기 위한 수정이었다. 그렇지만 이 외부의 형태는 공간과 그리 관계가 깊지 않다. 분절된 형태가 강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대 박물관 로비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은 정림건축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한 가지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돌출한 입구를 지나면 마름모꼴의 로비가 나타나고 그 좌우에는 상설전시장이 놓여 있다. 그러나 마름모꼴의 로비 때문에 상설전시장의 내부도 다각형의 공간을 이루게 되며, 이 로비는 다시 원형의 시청각실로 이어진다. 3층에서는 로비의 상부뿐만 아니라 네 개의 상설전시실도 정확한 마름모꼴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이 3층의 마름모꼴 평면은 다면 구성과 같은 측면을 보여준다. 단면상으로는 중앙의 통로 부분이 분절의 경계가 되어 있고, 로비 한가운데를 자른 단면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 순교자 기념관의 입면처럼, 바닥은 넓고 위를 향해 좁아지는 구성을 하고 있다. 그리고 상층 전시장의 하나는 전시장 치고는 다른 것이 비해 높이가 아주 높다.

특히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대해서는 다른 건물들에 비해 설계가 이 대학의 무엇을 어떻게 상징할 것인가 하는데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화여대를 상징하는 배꽃 봉우리가 피어나는 형상을 건물이 구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측면을 더욱 강조하는 것은 꽃잎 모양의 지붕면을 잇고 있는 기둥이다. 이 기둥은 잎의 줄기이며, 그 결과 건물은 식물의 형상을 건축화하고 있다. 그러나 평면을 보면 이 꽃잎 줄기를 표현하기 위해 전시장 외벽에 일부를 약간 덧댄 것이고, 이것은 하부의 벽기둥의 하나와 외관상으로만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도 입면은 3단 구성이다. 하부는 매스를 가볍게 하기 위한 ‘주랑형’인데, 이 ‘주랑형’은 단국대학교의 두 도서관에서도 되풀이하며 나타난 형태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단국대학교의 도서관이나 이화대학교의 박물관의 하부에 나타나 ‘주랑형’이 서고나 열람실과 같은 비교적 큰 공간의 외벽에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이화여대 박물관의 경우는 이 ‘주랑형’아 수장고나 자료실 등에 쓰였지만, 이 조형은 외부에서 보면 마치 박물관과 관련된 사무실이 길에 면해 있는 듯이 보인다. 따라서 이 ‘주랑형’은 내부 기능의 자연스러운 탐구와는 달리, 기능의 해석관 형태의 해석이 따로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단국대학교의 두 도서관의 상층 부분을 만드는 격자형의 프레임도 실은 이와 같이 하부를 만드는 방식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예닮교회

정림건축이 만든 여러 작품의 다른 중요한 측면은 기술지향적이다. 그런데도 다른 대규모 설계조직과 다른 성향이 있는데, 아마도 그것은 단편화된 고전 요소가 상징을 위한 주요 형태 어휘로 즐겨 사용되어 왔다는 점일 것이다. 기술지향적인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다른 대형 설계가무소의 태도와는 구별된다. 앞에서 예로 든 돌을 붙인 기념관, 박물관, 도서관과 같은 건물에서 밖의 표현과 안의 기능이 공간 속에서 명확한 일체를 이루고 있지 못한 이유는 바로 상징성을 표현하고 상징성에서 조형의 단서를 발견하려는데 있다. 교회건축의 새 방향을 설정하려한 예닮교회에서도 처마, 공포, 기둥의 이미지를 재현하고 있다. 그러나 단면상으로도 그것은 진정한 처마가 아니라 처마처럼 보이도록 밖으로 돌출시킨 것이고, 기둥처럼 보이는 것은 실은 창문 사이의 벽에 붙은 장식이지 힘을 받는 부재가 아니며, 따라서 기둥에 얹어 있어야 할 공포도 캔린레버 지붕에 붙은 장식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설계 설명은 적절하지 못하다. “처마, 공포, 기중의 이미지를 재해석하여 현대화함으로써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시간과 공간의 영속성을 예시하며···”(〔플러스〕, 1994.08) 정말 이 교회처럼 만들어진 처마와 공포와 기둥이 현대화된 것일까? 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영속성을 예시하는 것일까?

질문은 계속된다.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대한 설명, 곧 “또한 본 건물의 일화적인 기념성과 자기 완결적인 상징성을 생각해 볼 때 구상적 형식과, 표현의 채용은 보편적 어휘로서의 효용은 적을 것이나 이 건물 특유의 성격에는 잘 부합된다.”(〔건축문화〕, 1990.09)라는 설명은 예닮교회에서 표현한 생각과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박물관의 조형은 보편적은 아니나, 그 구체적인 형상은 건물이 지니는 상징성에 적합하므로 이를 건축화해도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앞에서 말한 박물관의 마름모꼴 중심부는 전시장이 아니라 캠퍼스의 상징적 구심적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형태의 상징성과 기능의 내포, 정림건축에게 ‘돌’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다. ‘돌’은 강건하고 견실하며 역사적인 것의 표현 수단이기도 하고 지역성을 나타내기도 하며, 나아가 신뢰와 불변, 상징성을 대신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몇몇 대학 건물에서 건물은 건물에 붙여진 이름, 건물에 부과된 의미를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그것은 중심성이며, 의미가 집결하는 곳으로 해석되며, 때로는 고전적인 3단 구성,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고전적 모티브의 인용, 구상적인 형태와 디테일을 통해 의미를 발생시키고 건물을 정당화하는 것이 바로 정림의 ‘돌’ 건축이다. 당연히 기능을 다양한 프로그램의 출발점으로 삼을 것 같은 대형 설계사무소에서, 오히려 기능의 문제를 선택하기 전에 의미, 상징을 근거로 수많은 건물을 만들어 왔음은 이외라면 이외이다. 물론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의 뾰족하게 경사진 지붕은 캠퍼스 주변의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 사실이지만, 다각형이 다시 건물의 상징성 표현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정림건축이 만든 건물 안에서 발견되는 ‘돌’의 여러가지 의미작용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준다.

정림건축 신사옥

여기에서 말하는 정림건축의 ‘유리’란 정림건축에서 구체적으로 만들어지 실제의 유리가 아니다. 그것은 정림의 신사옥이 지향하려는 의지를 달리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정림건축은 상당한 엔지니어링과 기술력에 힘입어 건축물을 아마도 가장 많이 설계한 조직일 것이다. 그만큼 정림이 주력한 한 가지 방향도 바로 ‘기술’인 것이다. 그러나 약간 거칠게 말하자면 이제까지 정림의 ‘기술’은 마치 퇴계, 율곡 도서관의 어떤 디테일처럼 그 ‘돌’과 타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한다. 정림이 만든 고층 사무소 건축은 다 알지 못하지만, 예를 생각나는 대로 들어본다면 동아생명사옥도 돌과 유리가 함께 상부에는 고정적이며 완결적인 형태 모티브가 사용되고 있으며, 한국야쿠르트 유업 본사 건물에서도 외관이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기술’은 이제 기능으로 다시 프로그래밍 되어야 한다. 기능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그것처럼 단편적 형태로 대체될 것이 아니다. 앞에서 대학 도서관이나 기념관 몇 개를 두고 침소봉대하여 말한 것은 다름이 아닌 바로 이 점을 지적하기 위함이었다. 먼저 앞으로 정림은 자그마한 상징성에서 건축의 단서를 찾지 않고, 그것을 고전적 단편으로 표현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기능’을 정면에서 풀어 그 자체를 형태화하는 방향으로 변모하기를 바란다. 이때 기능이란 기능주의자의 기능이 아니라, 새로운 복합적 현대건축을 발견하기 위한 기능을 말한 것이다. 또한 돌과 유리가 내부와 외부에서 표면의 디테일, 의미의 전달을 넘어 진정한 ‘물성’을 표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매끈하게 마감한 화강석은 돌과 금속 사이에 있는 것이지, 물성을 진정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단지 단순한 디테일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술과 고정된 의미 사이에 머물러 있지 않고, ‘물성’ 안에서 의미가 표현되는 건축이 앞으로 정림의 건축이 되기를 바란다.

야쿠르트 본사
동아생명 사옥

이것은 정림건축만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진정한 의미에서 건축의 현대는 현대적인 재료의 치장에 있지 않고, 실제의 ‘기술’과 엔지니어링 능력, ‘기술’을 구현하기 위한 현대의 복합적인 기능을 재편성하여 그것을 평면화하는데 있다. 바꾸어 말해 정림건축의 커다란 잠재력인 ‘기술’을 이제는 건축의 모든 분야에서 표면화하고, 근대 이후의 장식화된 건축유형에 대한 전면적인 의문을 제시함으로써 이를 통해 새로운 건축을 지향하는 일이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서 소유하는 공통의 감각이다. 그러나 이 공통의 감각이 곧 불변의 의미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건축가는 불변의 것을 한 가지 방식으로 지키고 고수하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불변의 것을 다양하게 드러내는 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마침 책상에 우연히 펼쳐 있는 벤 반 베르켈(Ben van Berkel)의 작품 두 개를 빗대어 정림건축의 발전 방향에 자극을 주고자 한다. 먼저 그의 바스큘 다리(Bascule Bridges) 근처에 놓인 관리인 숙소 건물을 생각한다. 이 다리는 그도 말했듯이 평범한 장소를 위한 다리이다. 다리라는 토목적인 풍경에서는 이화여자대학교나 단국대학교와 같이 이미 주어진 상징성도 없으며, 특정한 형태로 주어진 기존의 의미를 재해석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그는 다리라는 기술적 풍경에 애착을 가짐으로써, 익스펜디드 메탈로 덮은 약간 기울어진 작은 주택을 만들었다. 그결과 그는 이 작은 건물로 장소가 없는 곳에 반대로 ‘장소’를 만들었다. ‘기술’에 대한 애정이, ‘기술’이 만들어내는 평이한 환경에 대한 애정이 ‘장소’를 갖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건물의 스케일을 조절하고 풍경 속에 녹아 들어가게 만드는 것은 재료의 ‘의미’가 아니라, 재료의 ‘물성’에 있다.

다른 하나는 헤트 발크호프(Het Valkhof) 미술관이다. 베르켈은 이 박물관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이 갈 수 있는 루트를 생각한다. 건축계획안에 없는 내용이다. 시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유력한 방식이 제안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벽도 바꾸고, 구조도 바꾸며 각종의 엔지니어링을 바꾸어간다. 이렇게 기술의 시대에 근거한 평면의 계획법을 탐구하는 것은 주어진 상징적 의미를 건축적으로 번안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무릇 앞으로 ‘기술’이라 함은 평면의 조직을, 형태의 변화를, 물성의 제안을, 도시환경의 의미를 모두 포용하는 것이다. ‘기술’의 가능성은 건물의 외관 형태 속으로, 다시 말해 ‘돌’ 속에 내포되고 숨겨질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대 율곡기념 도서관

자료 및 정보 출처

《PA(PRO ARCHITECT): 정림건축》, 2001.03, 6~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