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구성원이 생각하는 정림건축 [특집] 월간 건축문화 200호

OB의 설계조직

이성관 소장/ 한울건축

작가와 작품과의 관계를 잠시 벗어나 설계집단과 사회와의 구도 속에서는 한 설계집단이 그 시점 그 내부에서 창출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최대한의 양질의 설계를 그 사회에 제공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대외전략이라고 믿는다. 일정 기간 이것이 반복되면서 유지될 때 건축주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소위 대사회적인 신용이 생기게 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자연히 수주 의뢰는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이다. 그러면 건축가는 내부에서 작품을 위한 일에만 몰두하게 되어 양질의 설계를 위한 한 발 다가선 여건이 마련될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기도 한 이러한 호순환을 기대하는 낙천적인 믿음으로부터 나의 사무소 운영 전략의 기본이 시작된다. 따라서 자체 내 팀 조직을 구성 할 때도 일의 물리적 효율성 보다는 설계의 질을 높이는 방향이 어느 것이냐를 기준하여 이를 우선으로 하여 이루어진다.

소규모 사무실에서는 조직체계를 논하는 것이 별의미가 없겠지만 규모가 어느 정도를 넘어가면 불가피하게 체계적 조직을 갖추지 않을 수 없다. 체계적 조직 구성의 필요성에 갈등을 느끼는 경우가 20~30명 규모의 사무실이라고 본다. 우리 사무실의 경우가 이에 해당되며 기존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극소화 할 것이라도 기대하면서, 현재 구성원 모두가 합의하여 실행하고 있는 사내 조직운영을 언급하려 한다.

일반적으로 소장 1인이 내부의 진행되는 모든 프로젝들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고 전 인원을 관장하며 관련을 맺을 수 있는 최대 인원의 한계를 대략 30명 선으로 본다. 현재 우리 사무실을 27~28명이며 3개의 실로 구성되어 있다. 1개 실은 8~10명 규모로, 실장 중심으로 작업하며 한 두 프로젝트를 자체 완결적으로 동시 수행할 수 있다. 각 구성원의 좋은 자질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매 프로젝트는 수시로 소장, 3실장, 담당자들이 모여 계획안에 대해 충분한 토론을 거친 후 가장 적절한 방향을 선정한다. 이때 고도의 운용의 묘가 요구되고 경륜이 필요하게 된다. 이 방법이 적어도 현재 우리 사무실의 여러 장단점을 감안할 때 작업의지를 높이는 데서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

작업의 생산 능률로만 본다면 미국처럼 디자이너와 Dratman, 매니저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으나 우리의 정서는 모두가 계획과정과 실시과정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길 원하고 있다. 따라서 특히 실시설계 과정에서도 지속적으로 엄청난 양의 디장인상의 결정이 요구되기 때문에 전문성의 결여라는 기획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이 방법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팀 내의 실시설계 베테랑이 각 실에 소속되어 있어 조정과 보완을 해주며 기타 구성원의 비상한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인화나 기회균등, 소속감 등의 정서적 측면의 충족이 작업의 에너지 총량을 높인다고 믿는다.

일단 한 사무소가 30인 정도의 규모이면 소형 프로젝트들의 계획범위를 넘어 중·대형 프로젝트들도 간혹 접할 기회가 있어 왔다. 이러한 규모가 큰 프로젝트에서도 비교적 엉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전의 대형사무소 (한국에서의 정림건축 근무와 뉴욕의 HOK)에서의 근무 경험이 도움을 주었다. 대규모 조직의 사무소에서는 당연히 대형 스케일의 프로젝트 위주의 일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곳 출신들은 대형 프로젝트에서 유연성을 상대적으로 잘 발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소형 프로젝트에서는 일반적으로 아뜰리에 출신보다 다른 불리함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각 입장에서의 이러한 프로젝트 크기상에서 오는 한계점이나 제약점은 시간이 지나면서 극복되게 된다. 크기상 양극을 넘나들 수 있게 하는 것은 디자인이란 보편성이 그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프로젝트의 성격이나 위치는 제각기 달라도 ‘디자인한다’란 점에서는 이 모두가 공히 같은 것이라는 생각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형 프로젝트를 위주로 하다 보면 소형 프로젝트를 다시 경시하는 못된 버릇을 가지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럴 때는 부단한 자기 극복의 노력이 절대 필요하다. 일을 맡기는 사람들의 꿈의 크기는 모두 크고 동일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7년간 근무했었던 정림건축은(76~82) 그 당시에도 규모가 컸다. 사무소 외의 건축인들을 별도로 만나지 않아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만큼 그 속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몸 담고 있는 그 곳을 좋게 만들어 보려고 우리는 무던히도 애썼다. 그 당시 일을 수행하면서 문제점으로는 느낀 것은, 정림과 같은 대형 사무실도 양질의 창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단지 소규모 사무소 5~6개가 물리적으로 모인 사무실이란 성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유기적이 되지 못한다는 게 아쉬웠다. 양적으로는 비상시 엄청난 기동력을 가졌으나 질적으로는 1개실의 담당 디자인 개인 수준을 넘을 수 없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사내 다른 팀의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으나 제도적 수준으로까지 이루어 질 수 없음에 아쉬웠다. 1인 카리스마가 없었던 그 곳에서 우리는 사무실 전체의 일관된 작품을 찾으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리였던 발상이었다. 정림 전체로 보면 각 실이 개별적으로 운영되어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하게 되는데, 이것은 대규모 사무실이 누릴 수 있는 하나의 열린 시스템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1인 카리스마는 유한할 수 밖에 없으나 이러한 열린 시스템 하에서는 유한한 1인을 넘을 수 있는 재원들을 포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잠재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정림이 아직도 국내굴지의 사무실로서의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열린 시스템에 힘 입은 바가 크다고 본다. 이는 고려되어져야 할 몇 가지를 희생시킴으로서 손쉽게 얻어지는 어떤 화려함 보다는 가급적 모두를 건져 두루 담아보려는 익명적 견실함을 바탕으로 하는 윤리성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 본다.

어는 설계 집단에 있어서 질과 양을 두루 고려한 가장 바람직한 조직 체계가 어떤 것인가는 정론이 나올 수 없으며 전적으로 상대적이며 개별적인 사안이다. 그 시점 그 조직 내에 모인 구성원 개개인의 자질이나 성향을 충분히 고려하여 자체 내의 질과 양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운영 방법을 찾던가 적합한 구성원을 외부에서부터 찾아 보완하여야 할 것이라고 본다.

《월간 건축문화 200호》239쪽


신입사원의 전망

이호/ 설계 1본부

왜 이 사무실을 지원했는가
아마도 선배들의 직·간접적인 권유가 이곳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듯 싶다. 일반적으로 건축설계 사무실에 다니는 선배들은 자신이 속한 사무실에 대해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결 같이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을 내세우며 신입으로 들어오기에는 적당치 않다고 만류한다. 유독 이 사무실에 있는 선배들만이 자신들의 일과 역할에 대한 만족감을 확실히 표시하였고, 그러한 모습들이 학교에서 보아오던 선배들의 모습들과 이어지는 느낌을 주는, 분명 다른 곳과는 차별화된 인상을 보여준다.
부수적으로 사회적인 지명도를 무시할 수 없었다. 솔직히 대학원이라는 짧지 않은 학교생활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부모님께서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무실에 들어가겠다고 한다면, 굳이 말리시진 않으시겠지만 한편으론 섭섭해 하실 것이라는 부담감 때문에 기왕이면 어느 정도 알려진 사무실을 우선적인 선택조건으로 정하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그만 아뜰리에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작업을 하고도 싶었기에 갈등도 적지 않았다. 이 사무실에 다니는 선배는 아니지만 그 선배가 이 곳을 일컬어 ‘대규모 설계사무실의 조직력과 소규모 아뜰리에의 작품성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고 있는곳’으로 적극 추천하였던 것이 갈등을 정리하고 이 곳을 선택하게 된 주요한 동기가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현재의 사무실에 대한 만족도, 느낌은
스스로 나를 평한다면 미래에 대한 턱 없는 낙천주의자다. 하지만, 현재에 대해선 늘 불만족스럽다. 늘 노력도 부족하고, 의지도 약하고… 아마도 지금 내가 놓여진 위치가 다른 곳이라 하더라고 만족.·불만족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이 사무실에 대한 나의 만족도는 만족 49, 불만족 51 정도이다. 하지만 바로 내일이 오늘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가능케한다. 내가 좀 더 관심을 갖고 좀 더 노력을 한다면 분명 만족도가 50을 넘을 수 있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주어진 환경을 내 스스로가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완전히 상반될 것이다. 건축도, 예술도, 문화도 그리고 사람도 크게는 감성적 성향과 이성적 성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고, 그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대규모사무실이 보다 이성적이고 조직적이라면, 소규모사무실은 감성적이고 인간적(?)이라는 막연한 구분을 갖게 한다. 하지만, 현재 팀별로 운영되는 현재 이 사무실의 체계는 팀원들간의 긴밀한 인간관계를 필요로 하고 또한 가능케 한다. 어딘들 크게 다를 바는 없겠지만, 내가 속한 팀도 역시 그러하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많은 가능성을 갖고 나에게 열려있다. 내가 어떤 자세로 마주보고 대응하며 나아가느냐의 문제지, 만족·불만족의 의미는 아닌 듯 싶다. 여전히 지금 이 순간은 만족 46으로 부족하지만…

현재 하고 있는 일은
이 설문에 답변을 쓰고 있는 동안 바로 직전까지 밀려있던 본부의 설계도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의당 신입사원이라면 해야 하는 복사 심부름, 창고 정리, 자료실 정리 등은 당연히 나의 몫이다. 신입사원으로서 막내로서 해야 하는 책임과 통과의례라 생각되는 부분이라 제외할 수 없어서… 현재 입사한 지 만 11개월을 넘어섰다. 첫 달은 신입사원교육으로 보냈고, 5개월간 하나의 프로젝트를 초기 개념도입 단계에서부터 최종 실시설계 납품까지 참여하였다. 비록 세세한 부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지만, 연면적 10,000m² 정도 규모의 건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했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프로젝트와 거의 유사한 개념의 건물을 기존 건물에 증축하는 계획을 허가단계까지, 이어서 현재 역시 유사한 성격의 건물의 실시설계에 참여하고 있다. 사이사이에 보고서 작업, 프리핑용 보드작업, 현상설계 패널작업 등에 참여하기도 하였고, 요 며칠처럼 자료정리도 한다. 대부분의 신입사원이 그러하겠지만, 스스로 판단하여 스케줄을 만들고 진행시켜 나가기보다는, 그때 그때마다 이런 저런 부딪치는 일에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 지속적인 신입사원에 대한 교육 차원에서 담당대리로 하여금 함께 작업을 진행토록 하는 본부의 방침이 있지만, 역시 그 속에서 내게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받아들여 발전시키는 것이 나의 몫이고 능력이리라 생각된다.

이 사무소를 그만둔다면 어떤 곳으로 갈 것인가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낙천주의자다. 비록 오늘은 불만족스러워도 다시 말해서 내일은, 미래에는 내게 있어서 보다 좋은 환경이 내게 펼쳐진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떠한 방식으로 앞으로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지금 이후의 시간의 의미는 보다 풍부해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흔히들 묻는다. 10년 후의 당신의 모습은? (이 질문은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때에도 받았다.) 그때도 역시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려고 오늘을 살고 있을 것이다. 이 곳보다 더 조직화된 대규모의 사무실일 수도, 조그마한 아뜰리에 일 수도,혹은 공부를 더 하고자 할 수도 있다. 요즘 같은 불경기가 창업의 적기라며 흥분해서 나설 수도 있고, 일단은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확실히 발을 디디고 서 있고 싶다. 언젠가 앞으로 발을 내딛을 때 이 자리가 든든히 힘을 받아줄 수 있도록, 든든한 오늘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월간 건축문화 200호》 241쪽

자료 및 정보 출처

《월간 건축문화 200호》, [특집] 정림건축, 1998년 1월, 239쪽, 2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