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유연성 그리고 새로운 시작 태두건축 소장 이필훈

글의 범위

한 그루의 나무엔 그가 자라온 온갖 흔적이 담겨져 있다. 벼락을 맞은 자리, 가지가 꺾였던 자리, 가뭄과 홍수를 견딘 흔적까지를 함께 간직하고 있다. 사람도 나무와 다름없이 그가 살아왔던 삶의 궤적이 눈빛에, 웃음과 말투에 그리고 가슴에 인각되어져 있다. 이 삶의 흔적들은 각 개인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정해주고 가치관을 심어주며 판단의 기준을 제시한다.

건축가의 창조적 사고와 능력에 의해 생겨나는 공간구성과 형태표현의 원초적 출발점도 건축가의 건축에 대한 이해와 자세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큰 집단에 있어서도 Leader건축가의 건축에 대한 방향설정은 그 집단의 방향타로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정림」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우리는 김정철, 김정식에 대한 논의에 앞서 「정림」으로서 이야기 한다. 「정림」 내부의 건축인들도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할 때 각 팀별 어프로치에 대해 주로 이야기 한다.

그러나 조직이 그러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유도되는 것은 지도자의 건축관에 의한 판단에서 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정림」의 작품들이 한번쯤은 건축가 김정철, 김정식과 연계되어서 분석되어질 필요성을 느끼며 「정림」의 작품으로서이기 보다는 김정철의 작품으로서의 분석에 초점을 맞추길 원하는 편집자의 의도를 나름대로 上記와 같은 의미로 해석해서 글의 범위를 정한다.

김정철의 건축관

1) 합리주의

Peter G, Rowe의 「Design Thinking」을 보면 디자인 사고행위의 특성을 대체로 다음과 같은 3가지 접근 방식으로 분류한다.

  1. 건축가가 체득하고 있는 특정형태(Pre-form)를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방식
  2. Context에서 얻어지는 정보에 의거한 접근 방식
  3. 이 두가지 개념이 상충하여 상호 보안적으로 채택되는 방식

결국 설계행위의 특성을 건축에 대한 전제(Pre-conception)와 육감(Inspiration)에 의존하는 건축가의 타입과 주어진 디자인 문제에서 발견된 제약조건에 단계적으로 접근해서 얻어지는 정보에 의지하는 건축가의 타입으로 분류하고 있다.¹

전자는 추론적 해석의 입장을 지니는 건축가로 건축을 건축자체와 그 구성요소들과의 관계로 파악하여 자율적 영역 속에서 이해하고자 하며 후자는 건축을 인간과 세계의 가설화된 사회와의 관계에서 고찰하여 건축의 외적영역과 관련시켜 해석하고자 한다. 여시서 외적인 정보는 디자인의 합리적 사고의 중요한 바탕이 된다. 전자는 건축적으로 낭만주의적이며 표현적 성향을 띄게 되며 후자는 합리주의적이며 기능적 성향을 띄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다소는 위험하지만 이분법적 구분은 추상예술에서도 나타나는데 추상예술의 다양한 경향을 일반적으로 두개의 양극으로 구분해서 ‘서정적 추상’과 ‘기하학적 추상’이라고 명명한다.² 이 두개의 원형은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의 방법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색채와 형태의 구성을 작가의 내면적인 감정의 표출에 전적으로 내맡기는 일종의 표현적, 정감적 방법(칸딘스키)을 ‘서정적 추상’이라 부르고 색채와 형태의 엄격한 논리적 질서에 의해 화면을 구축해가는 일정의 지적, 합리적 방법(몬드리안)을 ‘기하학적 추상’이라 부르며 그러한 표현태도 때문에 전자를 <뜨거운 추상>이라 하고 후자를 <차가운 추상>이라 부르기도 한다.

김정철은 어느 타입의 Design Thinking을 가지고 있는가. 수차례의 대답을 통해서나 작품에 나타난 건축적 사고를 분석해 볼 때 확연히 후자에 속하는, 즉 건축을 인간과 세계와의 가설화된 사회와의 관계에서 고찰하는, Context를 중요시하는- 클라이언트와 최종 사용자까지를 포함한- 합리주의적이며 기능적 성향을 띄는 건축가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2) 공간개념에 대한 인식

건축이란 것이 인간의 거주를 위한 ‘공간’을 창조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서양 건축사를 살펴 보면 ‘공간’에 대한 중요성보다 표피 즉 입면에 대한 중요성이 강요되었던 적이 많았고 작금의 포스트 모던 논쟁도 마이클 그레입스와 구심적 공간에 의한 고전적 공간의 재현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 건물이 뒤집어 쓰고 있는 전통적 재현의 껍데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30개의 수레바퀴살이 수레중심에 모인다. 수레바퀴 중심축의 유연성은 그 중심구멍에 있다. 우리들은 진흙덩어리로 그릇을 만든다. 그릇을 쓸모있게 하는 것은 그릇 내부의 빈공간이다. 우리들은 방을 위해 문과 창을 만든다. 그 방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 방의 아무것도 없는 빈공간이다.” -그러므로 형체가 있는 것으로 이로움을 지니지만 형체를 쓸모있게 만드는 것은 무형의 것이다.-³ 노자(BC.550)

건축설계를 하면서 공간의 중요성을 깨닫는다는 것은 건축가로서 한단계 높은 곳으로 올라감을 의미한다. 얼마나 많은 건축가가 건물의 표피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지 또한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필요한지.

김정철의 최근 작품에서 보여지는 공간들은 조금씩 자기의 빛과 색을 갖추기 시작했음을 느끼게 한다.

3) Humanism

건축가 치고 인간을 이야기 하지 않는 사람은 없고, 휴머니즘에 감히 반기를 드는 사람을 국내에서는 거의 만나본 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人間을 위한 공간’ ‘사용자에게 가장 편리하고 기능적인 건축’ ‘보행자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외관’ ‘Human Scale’ ‘人間的인 건축’ – 하도 들어서 식상하기까지 한 건축 고정메뉴이다. 그런데 정작 건축가 자신은 인간혐오에 빠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축가를 대우해주지 않는 사회에 대한 혐오감, 허가권자로 목이 곧을대로 곧아지 저급 공무원에 대한 혐오감, 천민 자본주의 산물인 무식한 건축주에 대한 혐오감, 자신이 설계사무실을 다닐 때와 달리 만사를 따지고, 책임보다는 권리를 앞세우는 직원들에 대한 혐오감, 시공현장에서 도면을 무시하고 멋대로 지어대는 시공자에 대한 혐오감.

도대체 우리가 사랑하는 人間은 누구이며 우리가 만든 공간에 거주한다는 人間은 또 누구인가. 우리가 사랑하는 人間이란 우리 머릿속에만 맴돌고 있는 불특정 다수이며 우리가 미워하는 人間은 우리 주변에 실제로 존재하는 人間들이다. 건축가들은 실존적 人間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이상적 인간만을 사랑할 따름이며,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Humanist는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人間사랑이란 어떻게 보면 간단한 논리이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열린 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안영배 교수가 평한 김정철은 ‘자기의 주장을 온건하고 부드럽게 표현하는 영국신사다운 성품의 팀웍 속의 건축가’이다. 자신의 건축적 고집을 관찰시키려 하거나 선험적인 건축적 형태를 주장하지 않는 열린 귀를 가진 건축가로서 평가한다.

4) 형식적 근대주의 혹은 맥락주의

하버마스에 의하면 ‘근대’라는 용어는 서구인들이, 공식적으로 기독교인이 되었던 17세기 후반에 로마시대 및 그 이전의 이교도적 시대와 대비해서 당시를 지칭했던 단어로 쓰였다고 한다. 신세대를 맞이하여 이전 세대들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게 될 때마다 그리고 그 방편으로 고대에 대한 일종의 모방으로 고대인들과 관계가 복권 될 때마다 그 새시대를 근대라고 불렀다고 한다.⁴ 그러나 이러한 고전에로의 복귀와는 다른 최근의 근대주의는 거론할 필요조차 없이 19세기 말에 그 탄생을 과격하게 알리게 된다.

근대주의(Modernism)의 출발은 철저한 사회성의 인식으로 볼 수 있으며 사회주의 이론에 의한 새로운 시대의 시작, 유토피아 건설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던 것도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로피우스가 그랬으며 특히 뜨거운 가슴을 지녔던 르 꼬르뷔제가 그랬다. 부르주아의 독점물이었던 예술의 산업화·기계화의 발달과 계몽예술가들의 노력으로 ‘예수의 민주화’ ‘효용적 예술’의 측면이 부각되었고, Van de Velde 및 피터 베렌스와 같은 화가들은 ‘이젤 페인팅’을 버리고 건축으로의 전환을 꾀했다. 프루동에서 윌리엄 모리스를 거치면서 바우하우스에 이르기까지 ‘L’art utile(효용적 예술)’이 찬양 받게 된다.⁵ 그러나 건축에 의해 많은 사회적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리란 예술가적 순수성은 자본주의와 탐식성 – 무엇이든 팔아먹기 위한 수단으로 변환시키는 – 에 의해 절식당하고 그들 속에서 잠재되어 있던 ‘인간사랑의 뜨거운 열정’은 한편으로는 현실을 탈피하여 예술 속에서 현실을 대체함으로써 현실과의 변증법적 관련을 내재한 형식주의적 모더니즘으로 변질되거나 모더니즘 자체를 별로 탐탐해하지 않았던 레닌과 마르크스⁶ 그리고 최초의 유토피아로의 첫 걸음이었던 소련에서 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짝사랑의 실패자로 서성거리게 되었다.

결국 근대주의의 발전은 내용이 빠진 형식의 발전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시스템으로의 강제적 행진을 계속하게 되었고 초기에는 저소득층에게 보다 싼값의 양질의 주택과 핍박받는 노동자들에게 인간적인 근무조건을 제공하기 위한, 인본주의적 발상에 의한 대량생산체제로의 건축적 발전은 또다시 부르조아에 더 큰 부를 몰아주는 가장 편한 시스템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예술의 민주화’를 위해 시작되었던 여러 운동들, 모리스의 생활 예술품 운동은 가격이 극도로 상승해서 몇몇 부르주아 주택의 장식품으로 화했으며 미적 자율성에 의해 추상화 될대로 추상화 된 건물의 형태는 대중에게서 완전히 유리되어 ‘예술의 대중화’가 아닌 또 다른 ‘예술의 엘리트화’를 창출했다.

왜 때늦은 모더니즘의 시작·발전·퇴행의 논의를 다시 들먹이는가? 그 이유는 단순하다. 기존의 「정림」에 대한, 그리고 김정철에 대한 여러 글에서는 「정림」, 그리고 김정철을 쉽게 모더니스트로 규정짓고 있다. ‘절제된 형태’ ‘모듈의 사용’ ‘비례 감각’ ‘마스적 입방체’ 등의 형식적 조건에 의해서. 그것은 혹시 「정림」의 프로젝트의 특성상 – 은행, 오피스 등 기능적 박스 형태를 요구하는 것들 – 발생된 것은 아니었을까? 작가적 표현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교회, 기념관, 주택 등의 작품은 왜 표현주의적 성향을 띄거나 요즈음에 이르러서는 포스트 모던적 형상을 갖게 되는 것일까?

김정철을 단순히 모더니스트로 간주하거나 그의 포스트 모던적 제스처를 모던적 테두리 안에서 해석하는 것은 더 많은 오류를 내포할 수 있다. 그러나 김정철이 모더니스트라면 모더니즘의 생성·변화의 흐름에서 볼 수 있듯 그 범주는 본인의 건축관이 계몽적 의식보다는 사회 순응적 의식이 강하므로 형식적 모더니즘이기 쉽고 기능적인 면의 강조에 의한 모더니즘이라는 논조도 결국 한국적 상황에서 본질적 모더니즘 운동이 없는, 모더니즘의 결과만을 수용한 형식적 모더니즘의 차원으로 해석되어지기 때문이다. 차라리 모더니스트이기 보다는 기존의 맥락 – 사회적 상황과 정치적 상황, 건축주와 사용자, 직원의 설계욕구까지 포함하는 – 을 분석하고 종합해서 이에 맞는 건물을 설계하는 광범위한 의미의 맥락주의자(Contextualist)로 평가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입장이다.

몇몇 건물에 대한 이야기

「정림」이 설계한 건물 중 어느 것이 김정철의 작품인가 하는 것은 별 의미없는 편가름일 수 있다. 또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그렇게 편을 가를 정도로 작품이 차별화되어 있지도 않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선별되어 작품집에 실리게 되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시대적으로 변형되어 가는 설계상 몇가지 특징적 사실들을 분석해 보고 그것들이 내포하는 건축적 의미, 건축계의 영향 그리고 건축관과의 연관관계 등을 검증해 보기로 한다. 분석될 건물은 기능 및 형태에서 상당히 대비되는 오피스와 교회를 중심으로 함으로써 내재되어 있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명확히 밝히는데 도움이 되도록 한다.

1)은행·오피스

70년대 ‘정림 스타일’의 은행·오피스건물이란, 대부분의 그 당시 건물들이 그러했듯 우선 박스를 짜놓고 면나누기를 하는 2차원적 설계 수준이었다. 건축계의 화제를 모았던 「외환은행 본점」도 일반인들에게 선큰가든이란 새로운 Item을 선보였지만 건축인들에겐 계획상의 새로운 제시보다는 설계규모에 대한 부러움, 건축기술적 문제(재료. 디테일, 실비·구조적 해결 등)에 대한 국내적 해결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더 평가되는 부분이었다. 물론 그 이후 현란하게 화장한 건물들이 주변에 들어차서 건물의 기능적 해결에 의한 건강미를 간직한 건물로서 현 시점에서 오히려 더 빛나 보일 수 있고 이와 같은 이유로 근대건축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정림」이 설계한 가장 모범적 건물이란 평을 받게 되었지만, 설계 당시의 시점에서 은행건물의 기능을 잘 해결한 PROTO-TYPE(전형), 즉 PODIUM+TOWER형을 제시한 것과 上記했듯 대형건물을 국내에서 소화할 수 있는 건축기술적 자신감을 가진 건축주와 건축가들에 심어준 의미가 더 평가될 수 있다. 「서울 상공회의소 회관」도 「외환은행 본점」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다만 입면적 디테일이 조금 더 입체성을 띄었을 뿐이다. 사무실 혹은 은행건물에 새로운 어휘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한국 수출입은행 본점」 그러니까 1982년경의 설계 시점으로 보인다.

「로얄빌딩」에서는 표피의 과감한 색상도입뿐 아니라 모서리에 곡선의 볼륨이 나타나고 상부가 후퇴되는 탄력성(물론 건축법규에 의한 조작일 수 있지만 법규를 어떻게 적용하느냐 하는 것은 분명 설게결정상의 문제이다)을 가지며 「수출입은행 본점」에 와서는 과감하게 이때까지 고수하던 Box를 부수는(?) 작업이 시도된다. 2차원적 면의 설계에서 3차원적 볼륨의 설계로, 그리고 건축계에 사무실 건물의 새로운 설계 가능성을 제시하는 움직임으로의 진전을 보인다. 「경기은행 본점」에 이르러서는 본래의 ‘정림 스타일’ – 경직되어 있고, 강하며, 일면 완고해 보이기까지 하는 매스감 – 에서 많이 일탈된 유연성을 제시하며 대형건물의 건조한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건축적 어휘를 표현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과 김정철이 갖고 있는 건축관과의 연계성은 무엇일까? 「정림」이란 집단이 갖는 특수성과의 연계는 무엇일까? 여러가지 면에서의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함축된 의미의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유연성’일 것이다. 작가의 건축관에서 살펴보았듯 김정철은 ‘합리주의적 토양의 건축가’, 또한 넓은 의미로서의 ‘맥락주의적 건축가’라 할 수 있다. 개인적 건축개념의 형상화 보다는 조건들을 수렴해서 분석하는 조건들이 바뀔때마다 탄력있게 대처해서 그에 맞는 형태를 창출하는 ‘유연성’, 바로 이 ‘유연성’ 이 새로운 「정림」을 가능케 하는 밑바탕으로 읽혀진다. 이즈음에 와서는 이런 ‘건축적 유연성’ 에 의한 다양한 형태표출로 많은 건축적 논의를 불러 일으키고 있지만 설계된 건물이 전체 건물의 10%도 되지 않는 척박한 국내건축환경에선 다소 과다한 몸짓이라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이제 시작하는 조그마한 건축적 손짓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며, 보다 더 많은 새로운 건축적 시도가 이루어져 그런 시도들에 대해 활발히 논의 될 수 있는 ‘場을 마련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의미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설계를 자신이 계속 베껴먹어 – 사실 원초적인 근거를 따지면, 그것 또한 남의 것이겠지만 – 어설픈 복사판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것이 마치 자기만의 건축적 어휘인양, 그래서 大家가 된양 행세하는 건축 형식주의는 이제 지탄받아야 한다. 또한 아무 뜻없는 형태적 모티브를 자신의 사인인양 – 물론 그 형태 역시 자신의 것이 아니면서 – 아무 곳에나 돌출시키는 치기어린 예술가적 유치함 역시 이제는 지양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진지한 건축적 실험 – 설계자를 드러내기 위한 자가 당착적인 실험이 아닌 건축계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건축적 실험 – 을 해야할 때이다. 이런 의미에서 Box를 벗어나는 몇가지 움직임은 주목받을만 하며 혹 다시 Box로 환원되더라도 ‘정지’ 의 의미와 ‘귀환’ 의 의미는 커다란 차이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잊지말아야 할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 움직임을 뒷받침 해줄만한 끊임없는 건축적 사유이다. 건축적 사유가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의 유연성은 타협성과 혼동될 것이다.

2) 교회

“교회는 어두운세상에 등불과 같이 세상 사람들의 삶에 소망과 사랑을 심어 주는 곳이다. 그러기에 교회는 신자건 아니건 동경하고 품에 안기고 싶은 포용성 있는 건축물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교회는 전달하기 위하는 메시지를 친근감있게 은유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인간의 내적 갈등과 그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의지하고 싶은 모습, 참회하며 기도하는 모습, 사랑이 가득 찬 부드러운 모습, 그리스도의 이미지, 하나님 나라의 소망 등이 조소적(Sculptural Form)으로 표현되어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너무 과장되거나 너무 특이하여 이상하거나 규모가 너무 커서 주변을 압도하지 않아야 한다. 성서적으로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과 화해하여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사람들의 모임을 뜻하며, 기독교는 이러한 하나님과의 본질적 조화를 바탕으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 사람과 자연이 조화와 사랑의 정신으로 화해하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연의 요소가 풍부한 농촌에도 큰 건물이 빽빽히 들어찬 도심에도 주택가나 Slum등 어떠한 환경에서나 잘 조화되어 그 자애로운 모습으로 하나님과 복음과 교회의 본질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사람들로부터 경멸이나 혐오되는 건축물이 아니라 구원의 상징으로 흠모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발길을 끄는 건축물이 되어야 한다.”⁷ – 김 정철 –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회의 이미지는 크게 두가지로 나뉘어 질 수 있다. 하나는 ‘神적인 이미지’ 이며 다른 하나는 ‘人間的인 이미지’ 이다. 두개의 이미지는 전혀 공존할 수 없을 정도의 양면성을 가진다. 神의 임재공간 이라면 그것은 휴먼스케일을 벗어난 공간이어야 하며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켜야 하며, 가장 성스러운 장소이며, 주변을 압도하는 경관이어야 할 것이다. 구약시대의 성전이 그러했으며 그리스·로마시대의 신전 또한 그러했다. 고딕시대의 성당 역시 神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해석되어질 수 있다. 이에 비해 ‘人間的 이미지’ 에 의한 ‘人間이 거주하는 공간’ 으로서의 교회의 의미란 무엇인가?

“내 말을 믿어라. 사람들이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때에 ‘이단이다’ 또는 ‘예루살렘이다’ 하고 굳이 장소를 가리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것이다. – 바로 지금이 그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 (요한복음 4 : 21-24절)

구약시대의 성전은 제사장을 제외한 일반인의 허락이 금지되었다. 그곳은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시는 장소였다. 그후 바벨론의 침공에 의한 노예생활 시절로 인해 ‘회당 (Synagogue)의 형태가 생겼고 이 장소는 일종의 민중의 장으로 여겨졌다. 시나고그란 의미가 ‘House of assemble’ 또는 ‘House of instruction’ 으로 모이는 집, 가르치는 곳이라는 뜻처럼 회당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사회적 활동과 신앙의 교육이 이루어졌다.

성전에서는 가장 깊숙한 곳에 궤(Ark)가 놓여 있었고 이 궤 속에는 토라의 두루마리와 거룩한 문서들이 보관되었으며, 이 궤가 안치된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지정한 때에만 들어갈 수 있는데 반해서 회당에서는 법궤가 모든 회중에게 공개되었다는 점이다. ‘말씀의 대중화’ 는 이미 회당의 내부구조에서부터 이루어졌고 예배형식 역시 제사중심의 예배에 말씀중심의 예배로 넘어오게 되었다.

핍박받던 초기 기독교시절 교회를 갖지 못하고 Catacomb 이라는 지하 공동묘소에서까지 예배를 드리던 이후 밀라노칙령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공인되자(AD 313) 예배는 공공적으로 거행되었고 바실리카가 예배집회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바실리카’는 일반 공회당 같은 건물로서 시민의 집회와 시장, 재판 등에 사용되었던 건축양식이다. 당시 로마에는 많은 신전이 있었는데 공회당 건물을 교회 양식으로 채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에 의한 배타성에 기인하기도 하겠지만, 기독교의 교회는 신의 모습을 비밀로 하는 신비스러운 건축물이 아니라는 점, 신의 집 또한 아니라는 점, 오히려 집회, 친교, 기도의 장소라는 의미에서 바실리카를 택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논리적 일 수 있다. 결국 신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장소이기 보다는 교인들이 모여 말씀을 듣고 친교를 하고 기도를 드리는 집회적 장소의 의미가 더욱 강하다는 것이다. 이후 교권이 강해지면서 다시 교회는 형식적인 면이 강조되었고 일반 신도들은 교회에서 유리되기 시작했으며 제사장 그룹과 같은 특권층이 교회를 장악하기 시작하는 구약시대로의 퇴행과정이 있었다. 그와 같은 퇴행과정은 현재 한국 개신교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가 회복하려 했던 것은 말씀에로의 복귀이다. 건축적으로 간단히 정리하자면 일반신도 중심의 공간 회복이다. 이런 의미에서 파악해보면 김정철의 교회에 대한 건축관은 상당히 정확하다.

많은 건축가들은 교회를 가장 성스럽게 보이도록 노력한다. 그래서 ‘가장 권위있고 장엄한 모습’ 으로 보이도록 애쓰고 이에 따라 ‘전형적이며, 전통적인 형태’의 창출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런 사고에 의해 결코 교회의 최선의 모습일 수 없는 ‘GOTHIC’ 의 형태를 도용하거나 외국의 교회 모습을 그대로 들여다 놓는 퇴행적 설계를 자행한다. 물론 그 뒤에는 형식적 권위주의에 어느덧 물들어 있는 교회측 건축주의 한몫을 무시할 수 없다. 

교인이 모이는 장소로서의 교회라면 프로토 타입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김정철의 지적처럼 농촌이나, 도심이나, 슬럼가나, 주변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자애로운 모습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정림」이 설계한 일련의 교회들 및 교회관계 기념관 – 「후암교회」 에서 「기독교 100주년 순교자 기념관」에 이르는 – 은 비교적 이러한 김정철의 건축관을 잘 반영한 집들이라 여겨진다. 후암교회의 평면은 초기 기독교 시절의 교회당 평면과 유사한 바실리카 스타일을 창조했고 「노량진 교회」및 「부산 삼일교회」도 매스의 적절한 분절에 의한 주변과의 조화 및 휴먼스케일화 한 의도를 충분히 읽을 수 있다. 회당내부에 있어서도 현대적인 조명방법등을 이용해 실내공간을 경직시키지 않으려는 의도들을 확인할 수 있다. 「전주서문교회」에 이르러서는 회당을 중심으로 한 기본적 형태마저 사라지고 대지의 형태에 순응하는 다소 유기적 형태까지로 발전하고 기존의 한식 종탑을 Focal Point로 남겨놓는 여유를 가진다.

“신도의 수에 따라 규모가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으나 교회건물 자체가 너무 크고 웅장하고 사치스러울만큼 화려한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그 지역사회의 중심이며 안식처와 같은 아담한 교회가 필요하다.”  – 김 정철 –

다른 기능의 건물들에 비해 교회에 대해서는 비교적 견고한 건축관을 피력하고 그 건축관에 따른 건물을 설계하는 모습은 이전에 서술한 ‘유연성’ 과는 또 다른 한 면이다. 비록 형태적인 우월성이나 상징성으로 자신을 드러내 놓지 않더라도 그렇지 않은 이유가 건축가의 근원적 건축관에서 유래했으며 그 건축관이 타당한 것이라면 그 건물 평가되어져야 할 것이다. 건축관의 타당성 여부에 대해선 무엇으로 평가기준을 삼을 것인가.

건축뿐 아니라 모든 학문 · 예술 · 종교의 궁극적 목표는 진리의 추구이다. 건축이 기능의 추구로써 그 목적을 달성한다면 건축은 더 이상 학문으로서, 예술로서 존재할 이유가 없고 ‘건축관’ 이란 의미 역시 헛된 말장난에 불과할 것이다. 건축이 학문과 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을 받기 위해선 설계된 건축물이 사회적 · 예술적 · 이념적 · 종교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어야 하고 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건축가의 올바른 건축관이 존재할 때이다. 이런 의미로 건축가의 건축관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그 타당성 여부가 논의되어야 할 것이며 이에 따라 그 평가 역시 이와 같이 제 분야에 대한 건축가의 이해 정도에 따라 검증되어야 할 것이다. 진리로의 접근을 위한 끊임없는 사고의 실험, 이에 따른 공간창조의 노력만이 건축을 집이 아닌 ‘건축’ 으로 존재시켜 줄 것이다.

맺음말

김정철은 ‘甲’ 이 되돌아 오는(환갑)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 서 있다. 「정림」 역시 요즈음의 작품을 대하면 새로운 모습으로의 변화를 시도하는 출발점에 있는 듯하다. 창조란 무엇인가? 그것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행위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한 필수조건은 ‘진정한 자유’ 이다. 김정철이 갖고 있는 ‘유연함’ 이 보수적, 긍정적 유연함으로써 보다 자유의지를 향한 ‘유연함’ 으로 계속 되길 바라며, 교회건축 등에서 보여준 ‘정확한 사유’ 와 조화를 이루어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나길 빈다.

「정림」에서 자유롭게 시도되는 여러가지 형태적 실험은 「정림」내에서 공유되어온 건축관에 뿌리를 둘 때만이 치기어린 유행적 손짓이 아닌 의미있는 건축적 몸짓이 될 것이다. 언젠가 「정림」에 대한 작품 비평에서도 언급했듯 대기업의 비호를 받는 덩치만 큰 설계사무실과는 확실히 다른 혼이 담겨 있는 작품들을 계속 만들어 내길 빌며, 눈을 현혹하는 FIGURE적 건물의 양산보다 그런 형태를 포용할 수 있는 건강한 GROUND적 건물을 만들어내는 설계집단으로 계속 성장하길 바란다.

註)
1) Rowe Peter G. (1987) 「Design Thinking」 Cambridge, Mass: The MIT Press.
2) Michael Ragon (1986) ‘김 현수 역’ 「l’art: pour quoi faire’」 -예술,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인가- p.158
3) 노자, 「도덕경」 제 11장
4) Harbermas, Jurgen 「Modernity – An Incomplete Project」 1983, Bay Press, p.3 – p.15
5) Michael Ragon (1986) 앞책 p.44 – p.45
6) Michael Ragon (1986) 앞책 p.30 -p.40
-프롤레타리아 예찬의 주변에서 프롤레타리아적이길 원했던 예술 및 문화는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예찬대회>에서 쓰라린 배신을 맛보아야 했다.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문화의 ‘창조’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전통과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관점’에서 비롯된 현존문화의 결과와 같은 가장 훌륭한 모델들을 발전시켜야 하며, 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기대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생활 투쟁조건을 발전시켜야 하겠습니다.》 결국 이 말은 부르조아 문화, 정확히 말해 전통 일반 문화에 매혹당한 프롤레타리아적 취향에 적응하는 말로 마르크스와 레닌이 《부르조아》문화를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7) 「정림 건축 작품짐」, 1987, p.77
8) 앞책 p.77
9) 「건축가」 91년 10월호 졸고 p.49

자료 및 정보 출처

《빛과 사랑의 건축》, 1992, 254~2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