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밀레니엄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의 자세 [컬럼] 월간 건축사 359호

건축계의 현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 IMF 경제체제하의 건축계는 다른 어떤 업종보다도 큰 타격을 받고 있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이렇게 암울한 터널을 지나야 끝을 보이게 될런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전쟁터의 초토화라는 표현을 TV자료화면을 통하여 보아왔지만 이렇게 심한 초토화를 예측한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기에 황당과 허탈을 느끼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설계사무실은 있되 직원들이 없으며 설사 직원들이 있다해도 할 일이 없는 참담한 상황이 일년 넘게 계속되어왔고 앞으로도 더 계속될 전망이 건축가들이 모여 앉으면 나오느니 한숨이고 입을 열면 걱정들 뿐이다. 누구하나 예외없이 이런 상황이다보니 땅을 살 수 있는 사촌도 있을 수 없고 배가 아플 일도 없어졌다. 차라리 배라도 아플 정도로 일부에서나마 잘 나가는 설계사무소가 늘어났으면 하지만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공장과 사무실이 텅텅 비어있는 상황에서 신축을 계획하거나 증축을 하겠다는 건축주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빈 공간이 다시 채워지고 신규 수요가 발생하는 상황으로 언제쯤 반전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설계경기의 현장설명때는 수십에서 수백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고 이를 이용하는 발주처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여 최소의 설계비로 건축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나마 설계비의 하한선을 유지시켜주었던 설계비 기분이 없어지게 되었고 부가가치세마저 신설되었으니 앞으로 건축설계는 공짜로 가능한 세상으로 바뀌어 건축가들을 더욱 암담하게 만들고 있다.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카르텔을 없애고 건축사들 스스로가 자유롭게 경쟁하여 설계비를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는 이론상으로는 그럴 듯하나 현실적으로 설계비 덤핑을 유도하여 조악한 설계를 양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몇 끼를 굶은 사람은 도둑질을 불사하는 법이며 노느니 싼 설계비를 받고 설계해주겠다는 건축가 없으리라는 법이 없다. 건축을 문화로써 생각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으며 기술 근처에도 못가는 행정대행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또한 떨쳐버릴 수가 없다.

1999년은 건축문화의 해. 건축을 문화와는 거리가 먼 공학과 기술의 변방쯤의 한 분야로 인식하고 있는 대다수 국민들에게 건축문화 개념의 대중화실현의 계기를 만들어 건축을 문화로 인식시킬 수 있는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그렇게 기대하던 건축문화의 해가 지금인데 주변환경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어려움만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돌아본 30년

춥고 배고프고 누울 자리가 변변치 않던 시절이 불과 30여년 전인 60년대 초였고, 젊은이들을 용병(?)으로 베트남에 파견할 수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다. 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운동을 시작으로 잘 살아보려는 노력은 세계가 감탄할 정도의 경제기적을 이루어 제3세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아사(餓死)가 사라지고 이곳저곳의 공장굴뚝에서 연기를 뿜어대기 시작하더니 경부고속도로가 개통(1970), 무역전시관(1980), 63빌딩(1985), 무역회관(1988) 등이 속속 도시를 채워나가 지금 서울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대도시의 도심은 고층빌딩으로 가득 차고 지장의 소·도시에까지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어 지난 30년동안 세워진 건물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물량이었다. 몇 년만에 고국을 찾은 해외돌포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고 바뀐 고국의 모습에서 경탄과 자부심을 느꼈다. 올림픽(1988)과 대전엑스포(1993) 개최를 전후하여 체육, 문화시설이 확충되었고 과천, 목도, 일산과 분당 등에 대단위 단지개발이 이루어졌다. 인천국제공항(2000년 준공예정)과 경부고속철도(2004년 준공예정)는 국가와 국가, 도시와 도시의 거리를 가깝게 만들게 될 것이며 이렇게 건축분야의 괄목할만한 성장의 중심에는 항상 건축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건축가들의 땀과 노력이 도시의 면모를 바꿔 놓았고, 밤을 낮 같이 일해야 하던 시절이었고 외국의 건축사들이 경험할 수 없는 규모의 설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그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좁은 국토를 벗어나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과 동남아 등 세계를 향한 우리 건축사들의 작업이 활발했던 행운의 기간들이기도 했다.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건축설계의 황금어장이 펼쳐 있었고 건축가들의 수확은 앞으로는 영원히 기대하기 힘든 기회의 시절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성장과 개발의 화려한 청사진은 경제제일주의와 개발우선의 논리를 잉태하였고 이에 편승한 건축행위는 질보다는 양적인 팽창의 결과를 낳는 부정적인 면도 없지않던 시절이었다. 삼천리 금수강산(錦繡江山)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몇 군데 국립공원에는 사람과 자동차의 홍수로 몸살을 앓게 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비록 부정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만 현재의 도시와 국가 모습을 만드는 중심적 역할을 한 지난 30년동안의 건축사들 노력은 과소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몇 차례의 불경기로 건축분야의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앞만보고 달려온 지난 날들이었고 외적인 성장을 거듭할 날들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조들과 선배들이 20세기에 걸쳐 한 일보다도 더 많은 일을 우리 건축가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내 지난 30년이었다.

새로은 밀레니엄을 향하여

20세기의 마지막 해인 올해도 두달이 이미 지나버렸으니 이제 10개월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기 위한 건축계의 준비기간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IMF라는 외적인 요인에 의하여 건축계가 황폐화되었다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룰 수도 없는 일이고 현실을 한탄한다고 누구하나 도와줄 사람도 없다. 스스로가 극복하고 인내하며 새로운 천년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농번기(農繁期)가 있는가 하면 농한기(農閑期)가 있게 마련이며 언동설한의 농하기 뒤에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이 풍요를 예고하는 봄철이며 농번기인 것이다. 가을수확으로 얻은 짚으로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만들면서 새로운 농번기를 대비하던 엄동설한의 작업이 우리 선조들이 하던 일이었다. 새로운 천년을 맞기 위해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 비록 엄동설한의 농한기가 길어진다해도 이 기간을 뜻있게 보내는 슬기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앞만보고 달려온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흘리고 놓쳤던 일을 한가지씩이라도 주어담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며 새로 시작되는 세기에는 흘린 것이 반복되지 않는 준비의 기간으로 활용해야 할 것 같다. 앞만보고 달린 사람은 지금 자기가 어디쯤 와 있는지, 제대로 온 길인지조차 확인할 겨를이 없게 마련이다. 어차피 남는 시간인데 차분하게 뒤를 돌아보고 지금의 위치를 확인 한 후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정리해 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건축을 예술과 문화로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기 이전에 우리 스스로가 이런 생각으로 건축활동을 해 왔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가 건축을 기술의 변방쯤으로 생각하면서 지내온 것 아닌가? 기술로 생각했던 앞으로 맞게 될 21세기를 대비한 기술을 얼마나 육성해 왔으며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건축가상(建築家像)을 만들어 왔고 지금도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한 일도 많지만 해야 할 일도 아직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건축이 부동산 투기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복부인이라는 신조어(新造語)를 탄생시킨 데도 일조를 했다면 이제 건축을 본연의 자리로 되돌리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며 국민들에게 건축을 문화의 일부분으로 인식시키는 데는 더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세계적인 규모의 건축은 있었지만 세계적으로 내놓을 만한 건축기술이 추적되어 있는 부분 또한 미흡하기 짝이 없다. 물가에 편승해 올라가기만 한 인건비에 상응하는 기술이 없으니 세계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건축계의 곳곳에 만연해 있는 거품을 걷어내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의 하나이다.

설계해야 할 대상이 없다고 시간은 멈추어주지 않는다. 흘러가는 시간을 멈추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니 가는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슬기만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시간이 남아 돌아가는 것이 아닌 오히려 부족한 시간인 것이다. 지난 30년간 흘리고 지나온 일들이 너무나 많았고 좋은 시절(?)이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건축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립하고 인식시키기 위하여 법적인 정의 뛰어넘는 도덕적인 책임을 지는 건축가로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로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고 바쁘게 지내는 준비기간으로 보내야 할 것 같다.

건축문화의 해를 맞이하여

“인간의 삶은 존엄하다. 그 존엄한 삶을 담는 건축 또한 존엄하다. 건축은 모든 문화행위의 바탕이 되고 동시에 그 시대를 총체적으로 표상하는 문화자신이다. 건축가는 예술적 능력과 고유한 철학을 갖고 높은 수준의 기술을 활용하여 보다 나은 사회의 환경을 만들려는 전문인이다. 또한 그 시대, 그 지역의 역사, 경제, 사회 문화를 건축으로 창조하는 실천인이며, 인류공동의 절대적 사명인 환경보전의 전면에 서는 시대의 증인이다. 지난 30여년 건축은 우리 경제발전을 주도한 주역이었다. 그러나 화려한 개발과 성장의 뒷면에는 전통적인 문화 가치가 심하게 왜곡된 질곡의 역사가 있었고 환경윤리가 무시된 채 급속히 진행된 근대화 운동으로 경제제일주의, 개발우선의 논리 그리고 이에 편승한 이기주의에 의해 건축과 도시는 비인간화되고 있다. 이로 인하여 국토와 자연환경은 무모하게 파괴되어 우리와 우리 후손의 생존조차 위협받는 위기에 처해 있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천년의 첫 세기가 열리는 역사적 전환기에 서 있다. 근대산업사회의 종언과 정보문화 사회의 시작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경제성장만이 삶의 질의 향상이 아님을 깊이 반성하고 인간환경의 본원적 가치를 새로이 구축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감으로 오늘의 위기를 의식전환의 기회로 바꾸어야 한다. 이제 건축은 모든 시민이 함께 만들고 함께 누리는 문화적 대상으로 되돌려져야 한다.

우리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선조들의 위대한 건축문화유산, 개발된 과학기술, 축적된 경제력 그리고 확고한 정체성에 근거한 철학의 기반 위에 이 시대, 우리의 건축으로 자리매김 하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으자.

1999년은 건축문화의 해이다.

문화가 일상을 채우는 새로운 세기, 지혜의 시대를 여는 새출발에 모두 함께 하자.

이상은 지난 1월 29일 ‘99건축문화의 해 선포식에 있었던 선언문 내용이다. 모처럼 한 우산 3단체가 되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며 건축계가 단결하여 한 목표, 한 목소리를 만들고 부단한 노력이 지속될 때 건축문화의 정착이 가능할 것이다. 건축문화의 해 조직위원장의 신문 인터뷰에 지적한 바와 같이 건축계 스스로도 국민들의 건축에 대한 의식과 관계없이 건축문화 정착에 장애요인을 제공해온 측면이 없지 않았으며 건축문화 대중화와 건축의 질적 수준향상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부단히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후진적 건축문화를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건축문화의 해를 통해 단합된 건축계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건축문화 개념의 대중화 실현에 이를 수 있도록 건축계의 총화(總和)가 필요한 해이기도 하다. 건축계의 가장 어려운 때에 빛을 얻어 치루는 일과성(一過性) 잔치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어려운 가운데 맞이하는 건축문화의 해이기에 더욱 소중한 기회로 활용하여 건축계 모두가 참여한 가운데 건축이 건축문화로 인식되고 나아가 건축문화 개념의 대중화 실현이 가능하도록 진력(盡力)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남의 일이 아닌 우리 스스로의 대 사회적 인식을 제고할 수 있는 철호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며 국민적 호응을 얻지 못하는 건축계 행사를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선언문 내용이 선언으로 그치는 결과라면 건축에 대한 국민적 이해는 더욱 멀어지게 될 것이며 건축문화의 대중화는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문화의 특성은 단기간에 제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는 노력과 주변여건에 의해 기적 같은 일도 이루어지지만 건축문화는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 노력을 필요로 한다. 건축문화의 해 당년도에 이루어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아갈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금년이 건축문화의 정착을 위한 첫 해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번 행사를 계기로 진정으로 국민들과 함께 하는 건축문화로 가꾸어 나가려는 건축계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재산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모두를 잃는 것이라고 한다. 지적 작업을 하고 있는 전문인인 건축가에게는 육체적 건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정신 건강이다. 지독한 불경기는 건축가의 재산을 잃게 할 수는 있지만 명예와 정신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일수록 정신적인 내실을 기하여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소비와 사치가 난무하는 거풍시절에는 뒤돌아보지 못했던 정신적인 여유를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준비기간으로, 건축문화릐 해를 뜻있게 준비하고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투자해 우리 모두의 염원인 건축을 문화로 인식하고 인식시키는, 한단계 도약하는 발판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자료 및 정보 출처

《월간 건축사 359호》, [컬럼] 새로운 밀레니엄을 준비해야하는 우리의 자세, 김정철, 1999년 3월, 10~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