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를 회고하며 [칼럼] 건축문화 103호

80년대는 우리의 역사를 세계에 보여주고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를 만방에 과시한 두드러진 시대였다. 더구나 건축계에 있어서는 조형적 시도 및 표현언어에 있어 더욱 과감하고 변화있는 형태의 작품이 많이 눈에 띄게 되었다.
이러한 여러가지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80년대의 건축은 건축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시기라 생각한다. 이제는 비평없이 받아 들이던 서구의 건축양식과 남의 문화 위주의 건축풍토에서 벗어나 우리의 것을 찾고 우리의 맛과 멋, 우리의 風과 여유를 살려 디자인한 것을 창의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건축계가 되도록 노력하자.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온다. 세월은 흘러가지만 이루어진 일들은 실체로 또는 기록으로 남아 역사가 쌓여지기 마련이다. 10년이라는 연대는 어느 나라, 어느 분야에서도 돌이켜 보고 되새기고 지나가는 한 단락이기 때문에, DECAD라 하여 10년을 묶어 평가하고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세월은 유수와 같으며 많은 것이 몰라보게 변화되고 발전하므로 이 기간을 한 단위로 생각해 보고 있는 것이다.

정치·사회적으로 70년대는 제 3 공화국 시대의 종언과 함께 지나갔으며, 80년대는 제 5 공화국이 출범했던 시기로서 새로운 통치권자에 의해 이끌렸던 격동기였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나 이 시기는 사회적 불안과 산업화를 향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세계가 이목을 집중시키리 만큼 개도국의 단계를 넘어 선진제국을 향한 기반과 저력을 마련하기 시작한 연대라 할 수 있다. 비록 국제사회는 최첨단산업에 박차를 가하고 이미 정보화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해 있지만, 우리는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의 서울올림픽이라는 대제전을 성공리에 끝낸 바 있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향상되었다. 따라서 80년대는 우리의 역사를 세계에 보여주고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를 만방에 과시한 두드러진 시기임에 틀림없다.

우리 사회는 경제적 발전에 힘입어 물질적 생활수준이 향상되었으며, 의·식·주라는 기본욕구에 탈피하여 일부에서나마 삶의 가치 및 보다 나은 환경을 찾는 시대에 와 있는 것 같다. 평생에 건축 (집)을 한번 할 수 있으면 성공한 인생을 산 사람이란 말은 옛 이야기이고, 건축가들이 감당키 어려울 만큼 많은 수요가 생겨 도시는 건축의 대 전시장인양 크고 작은 규모의 많은 건물들이 다양한 모습과 형체로 즐비하게 되었다. 강산이 변하듯이 건축계도 10년이란 햇수를 더함으로써 많은 연구와 경험들을 쌓았고, 그들의 생각과 안목도 깊어지고 높아짐으로써 그 결과가 도시양상에 잘 나타나 있다. 그렇지만 건축이란 건축가의 풍부한 경험과 안목만 높아졌다고 훌륭한 집이 건축된다고 기대할 수 만은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건축주와 사회의 건축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중요하며 전문가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곤란하다 하겠다. 아울러 건축가의 인간성은 물로 사회적 책임감과 그 자질이 높이 요구되지만, 적어도 건축가를 작가선생으로 예우하고 그의 철학과 전문적 식견과 기량을 높이 사는 아량과 사회수준이 아쉬울 뿐이다.

또한 건축을 문화유산으로 후대에 불려 주려는 건추주들의 건축에 대한 사랑과 건축적 의지가 부족한 것이 문제로 남아 있다. 건축에 대한 깊은 문화적 이해와 절대적인 뒷받침이 있을 때만이 훌륭한 건축이 설 수 있고, 그 건축과 도시들이 다음 시대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80년대에 괄목할 만한 활동을 하던 두 분의 건축가를 잃었다. 86년에 故 김수근, 88년에 故 김중업씨, 두 분 모두 한창 왕성하게 일한 나이에 타계한 것이다. 한국의 현대건축에 있어서 그들이 남겨놓은 작품들은 건축계에 부동의 자리를 지켰으며, 자라는 젊은이들에게 적지않은 영향력을 미쳤다고 믿는다. 그들은 작가적 명성도 남달리 두터워, 현대를 이끌어 가는 거장의 성가를 지니고 있어 80년대에 훌륭한 분들을 보내게 됨은 애석해 할 수 밖에 없다.

한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의 양 대회를 통해 50대 전후의 새로운 세대의 건축가들이 대형 프로젝트(아시안게임·기자촌·예술의 전당 등)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고, 사회적으로 부상된 것도 특기할만 하다. 건축의 양이나 규모는 물론, 그 수준과 질에 있어서도 80년대는 70년대와 비교가 되지 않으리 만큼 월등하다 할 수 있다. 70년대의 기능만이 중요시되던 실용주의적 건축은 less is more의 개념이 조형의 키워드로 역할했던 것과 비교할 때, 지나온 10년간은 건축 하나 하나에 작가의 의지를 담아 다소 독자적 표현성을 살리며 용도와 조화되도록 하는 경향이 되살아 났다. 아울러 포스트 모더니즘의 부분적 시도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과거에는 주로 수직과 수평요소를 활용한 매스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입체적 상자를 나열했던 건축에서, 80년대는 조형적 시도 및 표현언어에 있어 더욱 과감하고 변화있는 형태의 작품이 많이 눈에 띄게 되었다.

공간에 있어서도 단순한 경제성 위주의 실리적 공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대단한 메시지의 시도나 특성있는 아트리움, major space를 강조하고, 삶과 행위가 더욱 풍부하며 윤택해지도록 설계한 건축이 많아졌다. 특히 인테리어 디자인의 중요성이 인식되었고, 기업의 이미지와 공간의 생동감,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창출에 힘을 기울여 역작들도 많이 눈에 띄게 되었다.

재료의 다양함 또한 건축의 표현을 많이 변화시킨 분야이다. 주로 시멘트와 벽돌의 소재를 살려 지어지던 건축들이, 미려하고 우수한 외산자재의 수입사용이 가능해짐으로써 말끔하고 세련된 현대적 감각의 재료로 디자인되었다. 아울러 국내생산 자재의 질과 수준도 이에 자극받아 향상되는 효과도 나타나 재료사용이 다양해졌다. 콘크리트·라멘조 위주의 구조방식과 구태의연한 공법 등 기술이 낙후한 상황에서 철골조·입체트러스 막구조가 등장해 새로운 조형을 가능케 했고, 첨단적인 시공법의 도입이 대형건축과 고층 건물들의 출현을 가져 왔다. 더우기 오피스건물이나 대형건물들의 B·A, O·A, 통신정보 시스템 등의 소위 intelligent building의 출현과 이에 대한 관심도의 증대는 건축의 내용과 질적수준을 장차 더욱 높이게 될 것이다. 이같은 고급화·첨단화의 경향을 타고 사회 일각에서는 외국기술도입을 빙자한 외국 선호사상이 팽배해졌다. 이로 인해 대형 및 고층건물을 건축함에 있어 문화가 틀린 외국건축가에 의한 디자인과 설계가 이루어지고 건물이 세워졌다. 따라서 한국의 전통문화 바탕에 걸맞지 않은 건축이 범람하기 시작한 80년대임을 지적하며, 기업이나 재벌 등 발주자들에게 자제를 호소하고 우리 스스로 사회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는 건축계의 직능확보가 시급함을 인식해두고 싶다.

80년대는 70년대에 이어 수출 위주의 경제정책에 힘입어, 모든 면에 대외로 눈을 돌린 국제화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아시안게임, 서울올림픽, PATA총회를 비롯해 Rotarian대회까지 최소한 수천면 이상의 외국인이 한국에 모여 들었다.

건축계의 80년대도 국제화 시대에 앞장섰던 시대였다. Arcasia 대회, U.IA의 Sport Leisure & Tourism/MG의 국제건축 세미나, 외국의 저명건축가나 석학들의 각종 강연·세미나 등 건축 제 3 단체가 활발히 국제적 교류와 활동에 힘을 기울였고 다양한 대회를 국내에 유치했던 기억할 만한 시기였다. 자원도 빈약하고 낙후된 동양의 분단된 작은 나라로서 괄목할 만한 경제발전으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과연 치루어 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보던 서울올림픽이 전대미문의 성공적 인류 대제전으로 막을 내리게 되어 코리아의 이름과 지위는 국제사회에 있어서 새로운 인식을 낳게 되었다. 한국 건축가들의 작품이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바도 있으며 외국의 권위있는 기관들이 우수작품을 선정해 주고 있는 상을 여러 분이 수상한 것도 특기할 만하다. 이런 상들이 80년대 한국건축계의 큰 발전이라고 인정해도 좋을 것이다.

30여년 동안 미술에 속해 관전으로 치루어져 오던 국전이 82년부터 한국건축가협회의 주관으로 독립해 대한민국 건축대전이 탄생하게 된 것도 80년대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것은 정부가 주관해 운영해 오던 것을 우리 건축계가 맡게 된 점과, 건축이 미술에 속한 한 분야로 인식됐던 잘못된 시각에서 본연의 장르를 찾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관이나 사회에서 종속시 해왔던 건축이 독립선언을 하고 사회적 인식을 달리하는 새로운 출발을 한 것이다.

대한민국 건축대전은 해를 거듭하면서 그 의욕과 열기가 더하여 내용과 수준이 높아짐으로써 권위와 체통이 세워지고 있다. 과거 국전시절에 고작 20여 점이 출품되던 것이 이젠 300여 점에 육박하고 있다. 아울러 건축대전이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미숙한 시도적 작품이 주종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건축을 수업하는 젊은 건축가들의 생각과 꿈, 미래사회를 향한 주장을 담은 패널을 내고 겨루는 열띤 장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이 건축대전이 사회에 대한 건축을 문화로서, 기술만이 아닌 종합조형·환경예수로써 우리의 환경과 삶을 윤택하고 아름답게 하는 창의적 작업임을 인식시키고 좀더 건축의 존중한는 국민문화가 꽃피워지는데 기여하기를 기대해 본다.

80년대는 건축계에 있어 건축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시기라 생각한다. 이제 비평없이 받아 들이던 서구의 건축양식와 남의 문화 위주의 건축풍토에서 벗어나 우리의 것을 찾고 우리의 맛과 멋, 우리의 風과 여유를 살려 디자인한 것을 창의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건축계가 되도록 노력하자.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자연을 더 이상 인공으로 바꾸어 조악하게 만들지 말고 한국의 건축가에 의해 우리와 후대를 위한, 우리의 것을 90년대에 이룩하여 21세기의 미래사회에 기여하기를 기대해 본다.

자료 및 정보 출처

《건축문화 103호》, 1989.12, 36~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