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본점 [구작소개] 정림건축 설계정보지 제10호

한국외환은행 본점은 나의 건축 인생에 지울 수 없는 귀중한 작품의 하나이다. 그때 나의 나이 불혹 40년대초반, 이렇게 큰 현상설계에 당선된 것은 건축가로서는 큰 행운이었다. 나의 건축가로서 도약의 계기요, 정림건축이 조직화되고 대형화되어 지금의 명성과 신뢰를 얻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project라 여겨진다.

모든 건축 계획에 있어서 site가 주는 의미는 크다. 이 project의 위치는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오래동안 방치되어 지역 개발이 지지부진한 곳이었다. 이 대지는 명동의 낭만과 화려함을 다시 살려내야할 명제를 갖고 있었다. 먼저 서울의 Land mark로서 고층화 시키고 주위에 open space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을지로 가로변 환경은 미개발 지역이므로 특별한 context를 찾을수 없었고 이제 새로운 context를 만들어 내야 했었다. 대지와 관련하여 건물 lay out, 동선, 도시적 기능의 부여, open space계획 등이 면밀히 검토되는 철저한 설계과정이 이루어졌다.

외환은행은 새로 생기는 은행이지만 국제적 금융기관으로 도약하기 위한, 시중은행과는 차별화된 견축계획 안을 요구하고 있었기에 지금까지의 은행개념을 뛰어넘는 image를 창출해 내야했다. 그것은 중후함과 격조와 위엄으로 신뢰성 있는 디자인을 찾기보다 단순하고 간결하며 개방적인 건축을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지금 있는 건물은 현상때의 안과는 다르다. 명동으로 들어가는 도로의 확장으로 대지가 4-5m 정도 잘려서 재설계를 두차례나 하게 되었다. 현재 세워진 건물은 오피스 층추가 잘려서 Tower 자체의 비례도 나빠졌고 Tower&Podium, 이 둘의 mass나 대비나 구성도 그 의도가 많이 달라져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두 차례의 재설계에도 기본 어휘인 Tower&Podium의 Key word는 새로운 설계로 이어졌다.

국제적인 최고 수준의 은행건축이 되며, 오래동안 퇴색치 않고 친근감을 유지하는 건축을 만들려고 디자인 해 나갔다. 영업장은 개방적이며 편리한 공간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을지로와 명동입구에 인접한 위치에 배치하도록 하였다. 1, 2층만이 아니라 지하에도 영업장을 배치하여 썬큰가든을 만들어 밝은 빛을 도입하여 지하를 지상화 시켰다. 그 이후 금융기관 본점등 대형건축의 계획에 Tower&Podium 그리고 sunken이라는 개념이 자주 사용되었으며 정림의 많은 프로젝트에 지하 공간을 개방하기 위하여 썬큰가든의 게획이 많이 사용되어 왔다.

장차 을지로를 통과할 지하철과의 연결도 계획하였으나 보안과 경비문제, 서울시와의 승인 문제등이 해결되지 않아 연결계획은 무의로 끝났다. 당연히 미래에 대한 계획이 반영되어야 했다.

뉴욕과 시카고등 대도시에서는 이미 초고층화된 건축들이 즐비했고, 일본도 철골을 이용한 연구조 이론을 바탕으로 동경 무역 센타등 초고층화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서울에는 김중업씨가 설계한 3.1빌딩이 유일한 철골 구조의 고층건물이었다. 기술적 경험의 부족으로 고층화의 도전은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았다. 이런 여건 속에서 고층화의 시도는 현상시 33층안에서 대지의 조건으로 28층으로 허가를 얻어 시공하던 중 당시 행정조정을 받아 현재는 24층으로 낮아지고 말았다. 원래의 skyline에 이르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남산에서 내려다 본 서울의 인상은 회색빛의 건물로 채워진 무채색의 생기가 없는 도시로 보인다. 나는 서울의 굵직 굵직한 건물의 외장재의 색이 밝고 따뜻한 색의 옷을 입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 건물의 색은 처음부터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 꽃의 색을 쓰자고 제안하여 은행측의 동의를 얻었다. 그래서 영업동과 고층부 하부는 붉은<카멜>화강석, 고층부는 일본 아리다(유전)에서 구어낸 습식 타일(진달래색)을 P.C화하여 사용했다. 이 건물을 아는 많은 시민이 건물 전체가 외산 고급 화강석으로 만들어 진 것으로 인식 되고 있는 것은 잘된 선택인 것 같다. 재료의 좋은 선택은 설계에 있어 중요할 뿐 아니라 공사비의 절감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외부공간의 공개념화는 이 프로젝트에서 추구한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이다. 을지로 변에 전면 프라자, 대지 후면에 명동 프라자 등을 만들어 개방 하도록 했다. 건물이 차지한 땅을 제외한 모든 대지를 조각이 있는 조경화된 open space를 만들어 이용자와 시민에서 사용토록 하여 과밀화된 도심에 숨통을 트이도록 하였다. 경계선에 세우던 담장을 없애고 plaza를 만들어 공개한다는 것은 그리 쉽게 결단 내려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환경 조형물의 설치조례가 없을 때임에도 은행이 스스로 Art program을 세워 조각등을 요소 요소에 비치한 사례는 높이 살만한 일이었다. 시민이 즐겨 만나며, 쉴 수 있는 pocket park를 만들어 제공코자 한 일은 지금의 도시 설계에 의한 공개 공지의 개념의 적용이라 하겠다. 건물과 땅과 모든 시설들은 건축의 소유지만 이 시설을 사용하는 시민을 위하여 배려되어야 한다는 사회성과 공익성의 중요함이 새삼 강조되고 있다. 이 생각은 정림건축의 설계에 있어서 기본적이 철학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도 뒤에는 실패와 낭패도 있기 마련이다.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새로운 경험도 많이 하게 되었다. 이런 일을 통하여 부단히 좋은 작품을 만드는데 정진 해야겠다.

건축은 종합에술이며, 그 시대의 기술, 문화를 대변하는 척도라 한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친근감을 잃지 않고 시민과 더불어 건강하게 숨쉬며 서있는 외환은행 본점 건물을 볼때 마다 감회가 깊을 따름이다.

자료 및 정보 출처

《대청마루 정림건축 설계정보지 제10호》, 1996, 40~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