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함께한 60평생을 회고하며 빛과 사랑의 건축

참석자: 김정철(정림건축 회장)
김희춘(서울대학교 건축과 명예교수)
임창복(성균관대학교 건축과 교수)
이필훈(태두건축 소장)
권도웅(정림건축 부사장)
최태용(이방건축 소장, 72년-91년 정림 근무)
양진황(한울건축 소장, 82년~89년 정림 근무)

김정철 : 스승이신 김희춘 교수님을 비롯해 건축의 동역자인 여러분과 이제 耳順의 나이가 되어 저의 건축활동을 회고해 보는 자리를 갖게 되어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감회가 깊기도 합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창복 : 먼저 건축에 입문하게 된 동기를 말씀해 주시죠.

김정철 : 저는 평양에서 태어나 소년시절 대련(만주)에서 보냈습니다. 동양의 진주라 불리는 대련의 휘황찬란한 거리의 풍경들을 통하여 은연중에도 도시의 아름다움이나 건축에 대하여 막연하게나마 동경하게 되었는데 그같은 대련의 느낌을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구라파의 고풍조의 이미지와 유사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건축실무에 입문한 것은 대학시절부터 나가게 되던 「종합건축」에서 시작됐으며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광화문에 있던 「국제극장」 설계에 참여하여 객석을 스탠드식으로 설계하여 건축계의 이목을 끈 작품을 만들었던 일입니다.

임창복 : 「외환은행본점」 현상설계의 당선배경을 듣고 싶네요.

김정철 : 외환은행 재직당시 본점 신축을 위한 기획과 스페이스 프로그램을 작성하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은행이 요구하는 사항들을 잘 해결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심사위원들이 타워와 포디움으로 구성한 기능적인 「정림안」을 잘 이해해 주었습니다. 대규모 건물을 설계할 때는 건축주의 요구조건도 중요하지만 그 공간을 실제로 이용할 사용자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이 건축가의 임무라 생각합니다.

최태용 : 「외환은행본점」의 설계경험이 「정림」에게는 많은 도움과 발전의 계기가 되었고 직원들에게도 경험과 지식을 쌓는 귀한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최근에 완성된 「경기은행본점」 설계는 우리가 설계한 여러 은행본점과 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외환은행본점」과 배치등은 같다고 볼 수 있는데 다른 점은 지극히 개방적이며 시민들이 들어와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거대한 아트리움을 두어 지역중심의 공간화를 한 점입니다.

양진황 : 69년 회장님의 첫 해외여행시 많은 영향을 받아온 듯하며 그 이후 설계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정림」의 디자인 프로세스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외환은행본점」 전후인 듯 합니다.

김희춘 : 건축의 전통이나 한국적 이미지에 대한 생각을 알고 싶은데요.

김정철 : 솔직히 말해서 한국 전통건축에 대해 별로 배우진 못했고, 전문적으로 연구한 것이 없어 한국의 건축가로 부끄럽습니다. 한국의 전통건축이나 우리 것에 대해서 연구, 계승, 발전시켜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의 전통은 서구에서 볼 수 없는 고유의 아름다움과 멋을 가졌고, 그 이미지가 온유하고 부드럽습니다. 서양건축이 자연과 대조적이며, 압도하고, 정복적이라면 동양건축 특히 우리의 전통건축은 주위와 어울리며, 조화속에 존재한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소박한 맛과 멋, 비례감각, 섬세하고 부드러운 요소등 서양건축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우리 전통만이 간직해 온 것들이 있습니다. 이젠 우리의 전통을 살려 한국적 건축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내가 한국인이요, 조상으로부터 혼을 이어 받았기 때문에 나의 설계안 이곳 저곳에서는 은연중에 한국의 이미지, 요소, 전통, 수법들이 반영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경주 코오롱호텔」, 「KOEX전시관」, 「청와대의 PRESS CENTER와 본관」 등은 나름대로 전통적인 양식과 공간과 건축을 적극 발전시킨 작품들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고유의 멋과 맛을 살린 은유적이며 또 개념이 담긴 건축을 만들고 싶고 또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필훈 : 보통 70년대 「정림」의 건축은 박스 안에서 멀리온의 사이즈를 변화시켜 가면서 유리를 붙이는 수법을 많이 사용했는데, 예를 들어 「외환은행본점」이나 「대구은행본점」 「사학연금회관」은 모더니즘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80년대의 건축관에 대해 궁금해 지는데요.

김정철 : 70년대 「정림」의 작품은 은행등 금융시설과 사무실 건축이 주종을 이루었던 시기였습니다. 은행건물은 신뢰성을 중요시한 건축이서 품위, 안정성, 튼튼함 등의 표현이 요구되어 테두리가 있는 박스형으로 설계된 것이 「정림」의 디자인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금융기관의 성격과 이미지를 표현하는데 스킨에 표정을 만들어 주고 광의의 이용자를 위한 설계에 치중했습니다. 건축은 인간위주의 공간이 되며, 조화있는 Context로 도시를 메꾸어 나아가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80년대에 와서 공간의 중요성을 크게 부각시켜 Message와 윤택한 공간감이 있는 건축을 추구하면서 도시가 좀더 활력있는 환경으로 만들어 지도록 하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이필훈 : 어떤 건축가가 자기는 위대한 건축보다는 좋은 건축을 한다고 말한 것이 기억납니다. 좋은 건축이란 인간을 위한 편의성을 생각하고 건축주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지만 위대한 건축은 건축을 위한 건축을 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젊었을땐 이에 반감도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작품다운 작품을 하고 싶은 욕망이 든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회장님도 그런 열망을 느끼지 않는가 궁금합니다.

김정철 : 건축가로서 위대한 건축을 만들려는 꿈과 열정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와 「정림」이 생각하는 훌륭한 건축은 그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의 생활을 조화있게 창조하는 건강한 건축이어야지 건축을 위한 건축 즉, 사람이 살거나 이용하기 불편한 건축을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건축은 조각이나 모뉴멘트만은 아니며 인간을 담는 용기이기 때문입니다.

이필훈 : 종교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인간이나 건축에 대한 입장들이 신앙과 많이 결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나 네이브나 아일을 두는게 옳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교회가 말씀 위주이므로 그에 맞는 시스템인 강당이나 음악당과 같은 형식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지.

김정철 : 63년에 설계한 「후암장로교회」가 나의 첫 작품입니다. 당시 교회라고 하면 외형적으로 뾰족한 종탑이 있고 교인들이 모일 수 있는 예배공간이 있으면 교회건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이 와 계시는 신령한 공간이므로 단순한 강당 같아서는 안됩니다. 당시에 에로 사리넨이 설계한 교회건축에 감명을 받아 그러한 공간을 실현하고 싶었습니다. 경건하고 신비스러운 빛이 공간에 가득 미치고 중앙의 주공간을 중심으로 양쪽에 낮은 공간을 두어 예배공간에 변화를 주면서도 경제적인 구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기둥 때문에 설교하는 목사님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신도들의 불평도 있습니다만 공간이 가지는 예배적인 의미와 공간적 분위기는 잘 정리됐으며 상당한 기간동안 교회건축의 전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뒤에도 여러 교회를 설계하는 과정을 통해 교회건축의 개념을 알게 되었는데 「전주서문교회」를 계획하면서 예배공간의 개념을 더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서문교회」 설계 당시 가장 큰 문제는 상당히 많은 성도를 수용할 수 있는 예배본당으로서 경건하면서도 신령한 예배공간을 실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해결책으로 주공간을 두고 초대교회때 동굴속에 들어가 예배를 들였듯이 부속공간 개념을 응용하여 옆에 많은 공간을 두어 그 안에서 예배드리는 성도들이 하나님과 영적인 대화를 하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주된 공간 옆에 여러 작은 포켓공간을 배치하여 시선을 가로막은 기둥을 없애고 부채꼴로 펼쳐 넒은 예배공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큰 공간과 작은 공간이 다양하게 연결되어 성도가 하나가 된 공간으로 만들고 그곳에 빛을 도입해 보다 영적이고 엄숙한 분위기의 공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서문교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지역의 주변환경과 어울리는 건축을 설계하는 것이었습니다. 높고 뾰족한 종탑도 없고 여러 작은 지붕들로 이루어진 복합체적 조형으로 주변 주택들과 잘 조화되고 화합되도록 배려했습니다. 교회는 누구나 친근감을 갖고 접근하여 언제나 이용할 수 있고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도록 하기 위해 대지의 고저를 이용하여 Sunken Plaza를 두어 친교의 외부공간으로 만들어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지도록 했습니다.

이필훈 : 회장님이 생각하는 개신교회 건축의 전형은 어떤 것입니까?

김정철 : 개신교회는 말씀이 중심이며, 사랑이 충만한 곳이어야 합니다 . 하나님과 인간과의 조화, 성도간의 사랑,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과의 사랑을 나누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내적으로 성령이 충만하고 외적으로 지역의 빛이 되며 사랑을 나누는 지역의 중심적 건축이 되어야만 한다고 봅니다.

이필훈 : 이제까지 「정림」이 추구해왔던 경향을 보면 70년대는 강하고 기능적인 건물이었다가 80년대 들어와서는 작품적인 성향을 띄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지금 같이 있는 직원들도 일정 수준이 되면 건축작품 성향이 드러날텐데 이를 막지 않고 잘 키워주는 「정림」의 스타일을 설계하는 사람들은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품성향이 좋고 나쁨을 떠나 그런 경향에 대한 입장은 어떠신지요.

김정철 : 「정림집단」의 건축에 대한 이념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들을 위한 건축이지 인간이 소외된 건축은 만들지 않습니다. 물론 너무 경직되거나 혹은 모더니즘에만 치우쳐도 안될 것입니다. 건축은 주위와의 조화속에 공존하는 것이지 홀로 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간에 있어 형태만을 고집하지 않고 주위문맥과 잘 어울릴 수 있는 건축을 만드는데 노력해 왔습니다. 그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생명력과 메시지가 있는 그런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의 신선하고 과감한 조형언어는 공감하는 범위안에서 많이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필훈 : 설계를 하다가 한동안 지난 후에야 공간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는데, 르 꼬르뷔제도 거의 공간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회장님은 언제쯤 공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설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는지.

김정철 : 글쎄요. 전부터 의식해온 일이지만 여의도에 있는 「수출입은행본점」을 하면서부터 본격화된 것 같습니다.

임창복 : 교육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에 방법으로 실습생들을 자주 뽑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에 대한 동기는 무엇이있는지요.

김정철 : 이론만으로는 건축가를 만들 수 없습니다. 학교교육은 이론위주의 교육으로 실무지식의 부족과 실습과정이 없어 배출된 신인들의 설계능력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정림건축」에서 오래전부터 실습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학생시절에 실습을 통해 터득한 바가 많았던 것도 동기가 되었지요.

임창복 : 「정림」이 동숭동으로 오게 될 때까지의 뒷 배경이나 그 당시의 분위기가 궁금합니다.

권도웅 : 1967년 6월 을지로 1가 나즈막한 단층집에서 「정림」은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 실무실은 극히 열악한 환경이었지요. 건축의 질과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무척 노력도 했습니다. 70년 3월 북창동 삼옥빌딩으로 옮기면서 프로젝트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는데 당시 기억에 남는 작품이 「제분회관」입니다. 「정림」은 「외환은행본점」 설계를 위하여 인원도 크게 늘게 되었고, 그후 75년에 동숭동 사옥을 마련하고 자사건물에서 설계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임창복 : 「정림」의 작품들중 종교관련 시설과 은행시설이 많은 이유가 궁금한데요.

권도웅 : 회장님이 주로 그쪽 분야에 관련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분야뿐 아니라 플랜트설계인 「진해화학, 한양화학 사택」등의 공장계획이나, 산업시설물들도 많이 다루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계획들로 다방면의 건축설계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임창복 : 비례와 기능들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김정철 : 건축은 살아있는 조각이며 또한 건축은 표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요소들의 비례, 재료의 절감, 음영에 의해 나타나는 깊이 등을 건축의 표현 수법으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양진황 : 회장님은 비례에 있어 어떤 체계적인 이론을 정립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자기 느낌에 대비가 아름답거나, 부드럽다거나, 강약이 분명하다는 것에 대해 갖는 자기 자신만이 즐겨쓰는 비례감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비례는 절대치가 없으므로 프로젝트의 성격이나 Context에 따라 갖는 새로운 비례감이나 구성 기법등을 회장님은 강조했습니다. 또한 건축재료 사용에 있어서도 다양한 재료를 동시에 같이 쓰는 기법을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최태용 : 「외환은행본점」 현상설계 시절에는 비례와디테일을 강조하였고, 그 다음으로 작가로서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 철학과 작품을 하면서 생기는 변화된 시각을 어떻게 작품에 반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회장님은 많은 지도를 해주었습니다.

양진황 : 그 이후에 플랜에 있어 디자인 Objective등을 만들어 계획의 좋고 나쁨을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게끔 하기 시작했으며, 그에 따라 디자인 개념도 체계적으로 정립되어 갔습니다.

최태용 : 회장님은 건축이라는 직능을 통해 사회에 어떻게 환원해야 하는가를 중요시 하였으며 마음자세, 몸에 와닿고, 생활에 부딪히는 부분에 대한 친절한 해결등을 강조했습니다. 화를 내거나, 고성을 지르는 것을 보지 못했고, 항상 아침에 테니스를 즐기며 건강한 마음을 자랑하는 반면 그에 비례해서 건축가로서의 열정도 많습니다.

양진황 : 김정식 사장님과의 재료 사용법에 있어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장님은 디테일에는 신경을 덜 쓰지만 회장님은 재료를 많이 섞어쓰는 편입니다. 아마 이런 양극적인 부분이 있어 상호보완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임창복 : 끝으로 이제까지 정림이 지향해온 것은 무엇이라고 생가하는지.

김정철 : 「정림」집단이 지향하는 것은 훌륭하고 좋은 건축을 통하여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일이며, 창조자인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대자연을 어지럽히지 않으면서 건강하고 좋은 건축을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다음가는 창조자로 자연과의 조화, 인간위주의 환경을 정림적 팀플레이를 통하여 이룩하고자 합니다. 건축가에게 주어진 사명감을 갖고 작품을 통하여 사회에 이바지하며, 내적으로 차세대의 인재를 키워 세계적인 작품을 만들어 평가를 받는 「정림」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자료 및 정보 출처

《빛과 사랑의 건축》, 1992, 274~2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