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철과 정림 디자인철학 [특집] 대청마루 정림건축 설계정보지 제5호

정리·정용교/ 설계본부

한 조직의 역사와 전통은 그 조직의 수장이 갖고있는 철학과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게된다. 정림건축 역시 조직 뿐만 아니라 건축디자인 방향에서 김정철 회장의 창업 이래 줄곧 이어져 온 ‘디자인론’을 바탕으로 하고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에, 건축가 김정철 회장의 건축세계를 조명해 봄으로써 정림 건축 디자인의 현주소와 앞으로의 방향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 글은 지난 9월 28일 한국건축가협회 설계분과위원회가 주최한 ‘건축가 포럼’에서 김정철 회장이 ‘나의 건축세계-빛과 사랑의 건축’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토대로 정리된 글임.

하나. 나의 건축세계 – 빛과 사랑의 건축

1. 김정철과 건축

나는 어려서 해방전까지 만주 남단에 있는 도시계획이 잘된 대련이라는 아름다운 항구도시에서 어린 소년기를 지냈다. 그곳에서 잘 짜여진 가로와 조화있게 배열된 건물들과 환경이 주는 즐거움과 삶의 보람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꿈을 꾸면서 건축에 대한 “동경”을 하게 되었다.
아무튼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으로의 건축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건축가가 되었으며, 앞으로도 젊은이와 같은 열정으로 공간과 건축 그리고 도시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건축가로서 살아가려 한다.

2. 건축과 인간

나는 건축이란 예나 지금이나 항상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존재로 규정한다. 그러므로, 건축의 출발은 인간이 그 주체가 되어야 하며, 그리고 그 주체가 되는 인간은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실체로서보다는 개별적 실존”으로 이해한다. 즉, 건축은 인간의 생활상 필요한 물리적 행위와 생태학적 욕구충족을 넘어 인간의 내면 깊숙한 정신 세계의 욕구와 움직임이 충실하게 반영되고 표현되어야 한다고 본다. 또, 건축설계는 작업과정에서 모순에 봉착하게 되는데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풀어가느냐가 바로 건축설계술이다.
나는 건축도 하나의 생물로 보아 건강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설계에 있어서 자신의 독선적 주장을 자제하고,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풀어가는 건축방법론이 연구되고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을 위한 공간”, “사용자에게 편리하고 기쁨을 주는 건축”, ‘휴먼스케일(Human Scale)”, “친근감” 등이 사무실에서 흔히 쓰는 어휘이며 프로젝트 진행시 많이 쓰여지는 개념이다.
또한 건축의 가치는 시각적 메시지와 공간으로 표출되는 정신성에 있다고 생각하고, 이것은 초월적 개념으로서 인간성은 이러한 건축을 체험함으로써 정신세계가 고양될 수 있다고 믿고 건축가의 책임은 바로 이런 점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3. 건축과 사회

건축은 사회적 행위이므로 집단의 사고 방식과 행동양식을 반영하고 있으므로 사회적 행위에 반하는 건축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모든 건축가가 직관적 태도를 뛰어넘어 도시에 대하여 분석적인 이해를 통해서, 개개의 건물과 그 집합으로서의 전체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고, 또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인식하게 될 때 비로소 올바른 설계행위를 할 수 있다.
건축주의 요구와 필요가 수반하는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지만, 건축주의 요구를 해결하기에 앞서 사회가 요구하는, 역사와 시대를 포괄하는 문제를 직시하고 있어야 하며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요구와 문제들을 건축주와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축가의 이러한 역할 – 인간의 삶과 안전, 미래지향적인 사회에 대한 책임 – 로 인해 서구사회에서는 예우와 존경을 받는 것이다.
또한 건축은 다른 예술과 달리 작품을 만드는 기회를 사회로부터 제공받고 있기에 건축주의 이익 뿐만 아니라 불특정다수의 사용자, 심지어 통행인과 그 도시의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줄 수 있는 공간, 건축 그리고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기에 한단계 높은 차원의 건축적 요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4. 건축과 도시 그리고 주거

‘도시는 건축행위의 축적이자 삶의 축적’이다. 즉, 건축물들이 모여 지구(地區)를 형성하고 지구가 모여 지역을, 또 그러한 것들이 여러 가지의 질서체계로 엮어져 도시환경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결국, 건물은 도시의 구성인자이며 커뮤니티(Community)를 형성하는 기본단위이다.
건축은 도시구성의 문맥(Context) 속에 요소로 파악되고 완성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도시문맥의 기본단위인 건축은 그 지역의 인문사회적 환경, 역사적 배경위에 장소적, 조형적 당위성을 가져야 하며, 나아가서는 그 고유성 또는 특질을 더욱 강화하도록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도시문맥과 건축은 상호보완적인 유기적 관계를 갖기에, 건축가는 도시를 단순한 물리적 환경으로서가 아니라 끝없이 변화하는 살아있는 유기체로 인식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건축과 도시환경이 건강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관계를 몇 가지 개념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도시에서 요구되는 역할에의 적응
•새로운 의미의 제공, 이미지 창출
– 시각환경, 공간환경 또 그 구조들
•영역, 지표
•질서, 배경, 주제, 스케일
•도시의 문제

5. 빛과 사랑의 건축

나의 건축에서 빛과 사랑이라는 말은 절대성을 갖는 추상화된 개념으로서 건축을 설계하는 구체적 방법론이기 보다는 건축하는 자세로써 뜻을 가진다. 즉,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신앙인으로서의 생각들을 전개하고 판단해야 할 가치기준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치기준은 건축적 개념 또는 주제로써 구체화 시키기도 하는데, 종교시설의 경우 빛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사랑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여 공간 연출이나 조형의지의 출발점으로 시도된다.
즉, 빛은 은유, 상징적 의미부여 또는 직설적 도입 등등의 방법이 있으며, 사랑은 스케일, 친근감, 포용, 디테일, 질감, 색감, 소외감, 일체감등의 언어와 관계를 가질 수 있다.

6. 예술로서의 건축

나는 건축이란, 쓸 용(用)이 전제되고 있는 독특한 예술분야라고 생각하고 있다. 앉을 수 없는 의자가 가구가 이니듯 살수없는 집은 건축이라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실용성 있는 건축을 만드는 것이 건축의 목적이라 한다. 건축의 예술적인 면은 작가의 자아의식, 개성, 독창성의 세 성격이 갖추어져야하며 이것을 작품의 가치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건축은 예술적이여야하지만 예술에 너무 치우쳐도, 그 반대로 너무 통속적이여서 건축의 본질에서 멀어져서도 안된다고 주장한다. 다시말해서, 건축은 자아 의식이 강해서 독선적이거나 자기 만족적 강요가 되어도 안될 것이며, 독창성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특이성을 너무 강조해도 문제가 생긴다. 결론적으로 나는 건축이 예술성을 지니되 실용성이 있도록 기술의 뒷받침도 되었을 때, 예술로서의 건축이 된다고 생각한다.

7. 자연과 건축

나는 이제 우리 고유의 미의식과 멋을 찾아서 연구하고 계승, 발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건축은 지금 개방화, 국제화된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데 이에 대응하는 길은 우리의 것을 찾는 일, 우리고유의 사상과 전통을 내세우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동양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을 경외하고 존중하여 이에 순응하고 조화되려는 정(靜)의 사상이 오래동안 지켜져온 반면, 서양은 자연을 극복하며 이와 대립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동적이고 정복적인 사상이 지배해왔다고 보고, 이로 인한 동·서양건축은 대조적인 관념과 행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서양건축에 있어서 외벽(Wall)은 건축의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을 대립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하는 반면, 동양 건축은 외벽 대신 중간영역인 또 하나의 공간 툇마루와 벽과 추녀가 형성하는 매개공간으로 외부인 자연과 내부인 인공적 공간을 조절하여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또한 건축의 스케일도 고작해야 자연에 오붓이 안겨 있는 것과 같이 순응하는 방법으로 포근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반면 서양의 건축은 자연과 대립하고 있어 조화보다는 압도적 상호관계를 나타낸다고 본다.
건축이 자연과 잘 융화와 결합이 이루워질때, 더욱 건축다워진다고 생각하며, 자연이나 기후, 풍토를 건축에 잘 적용, 조화시키므로서 우리 고유의 건축미를 되살려 우리의 “맛”을 찾는 노력이 절실하다.

8. 건축행위(설계)와 설계조직

나는 설계행위의 주체로서 조직을 만들게 된 동기로 ‘환경으로서의 Total Design’을 꼽을 수 있다. 건축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분히 다원론적이고 합리적 방법을 갖고 있다. 건축고유의 내재적 가치를 충족시키거나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도 하고, 여러 문맥과 관계 속에서 내재된 질서를 발견하는 데서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 나의 이러한 방법론이 조직설계를 가능케 했다고 본다.
정림건축이라는 조직에서는 비교적 규모가 크고, 설계가 복잡한 프로젝트들을 다양하게 다룰 기회가 많았고, 앞으로는 이러한 기회가 더욱 많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대사회의 건축적 요구는 아트리에 사무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조직설계의 방법으로는 각 프로젝트의 특성에 따라 적합한 Process와 Team을 구성하게 되고, 필요분야의 전문가의 협조를 받는다고 한다. 여기서 프로세스란 설계과정에서 부정적인 문제점을 찾아 제거 또는 해결하기 위한 것이며, 진행을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뜻한다. 실제작업에 있어서는 역할에 따라 분업 또는 역할의 오버랩(Overlap)을 통해 보다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고 그러한 개념들을 다듬고 세련시켜 나간다.
“창조의 활기는 항상 개인으로부터 나오지만,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다른 사람들과 밀접한 협동을 함으로써 상아탑 속에 머무르는 것보다, 그 팀 동료들의 자극과 더전적 비평을 통해 더욱 높은 수준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라고 하는 『그로피우스』의 말을 되새기면서, 한사람의 견해보다 다수의 조정된 견해가 더 타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계획초기의 여러 구성원의 견해와 아이디어에 대한 개방적인 자세와 토의 과정이, 정림조직이 합리적인 작품을 만드는 기반이 되었다고 본다.
나와 정림조직이 추구하는 건축은 개성과 아이덴티티(Identity)를 추구하며 개개의 특수해를 구하려고 노력하는데, 여기서의 특수해는 여타의 것과 차별되는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개성과 표정이 조화 가운데 이루어지는 건축을 뜻한다.
그리고 건축가를 위한 건축이 아니라 사회와 사용자가 요구하는 건축을 하고자 하는데, 이는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선별된 디자인과정을 통해 합리적으로 디자인 목표와 개념을 설정하고 이것을 구체화시켜 나가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은 조직설계가 갖기쉬운 틀에 갇힌 경직성을 탈피하여 유연성을 갖게 되며 이러한 유연성은 조직설계의 장점이 되고 생명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림의 조직은 과거에는 15명 내외의 몇개의 설계실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진행을 해왔으며, 이는 종적개념과 다수의 관여자 중심으로 운영되어왔으나 현재의 조직은 소수관여자 중심으로 진행하며, 횡적으로 Team을 구성하고 설계업무를 전문화 – PM,PD,PA -시키고 있으며, 디자인 분야별 특성화도 시켜 나가고 있다.
나는 ‘건축은 능력있는 직능인이 행하는 미래를 내다보는 위대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무한한 책임과 끝없는 인내와 노력이 요구되는 일생을 두고 해도 부족한 대기만성의 직업이며, 창조자 하나님이 만드신 이 아름다운 동산에 우리에게 주어진 Talent를 가지고 살기좋은 건축과 도시와 환경을 만들어야 할 막중한 사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9. 소개 작품

1)교회
•후암장로교회 (’63)
•노량진교회 (’74)
•전주서문교회 (’79)
•순교자기념관 (’87)
•할렐루야 교회 (’93)

2)기타
•연세대100주년기념관 (’85)
•청와대 본관 (’89)
•청와대 춘추관 (’89)
•대덕과학문화센터 (’80)

3)사무소
•한국외환은행본점 (’73)
•한국산업은행본점 (’75)
•한국산업은행본점-학동안 (’76)
•한국산업은행존점-여의도안 (’85)
•장기신용은행본점(전자개발금융) (’75)
•대구은행본점(’81)
•한국은행본점안(’82)
•한국수출입은행(’82)
•경기은행본점(’89)
•전북은행본점(’89)
•일신제강사옥(’75)
•상공회의소(’81)
•로얄빌딩(’83)

4)현상설계
•이동통신센터(’90)
•중앙투자신탁본점(’90)
•전문건설회관(’91)
•주택공사본사사옥(’92)
•정부제3종합청사(’91)
•한국중공업기술정보센터(’94)
•체신공무원교육원청사(’93)
•한국이동통신분당지원시설(’93)
•한국통시대덕(2)연구센터(’93)
•신동아화재해상보험(’93)

둘. 강혁교수의 김정철론

먼저 이번 기획의 의도는 대표적인 중진 건축가와 소장비평가가 함께한 자리이다. 요즈음 신세대건축가 혹은 해외에서 갓 돌아온 건축가들은 다양한 자리를 통하여 자신들의 건축관을 알릴 기회를 가져왔음에 비하여, 오랫동안 실무작업에 종사해왔으며 한국의 근·현대건축의 살아있는 역사라 할 수 있는 중진건축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자리는 김정철 선생이 단순히 중진건축가로서 머물기보다 바로 우리의 건축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가려는 오늘의 건축가임을 자처한 자세를 보여주는 자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근·현대건축사라는 지형에서 김정철선생을 평가하는 데에는 상당히 어려운 점이 있다. 먼저 김정철선생은 정림건축이라는 설계조직의 운영자 혹은 관리자로서의 이미지가 너무 커서, 개인의 개성이나 취향 더나아가 고유한 형태언어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소개된 작품에는 다양함이 있어 하나로 끄집어 내기 힘들지만, 건축가로서 공유한 색채가 존재하고 있었고, 또 있다고 본다. 다만, 초기의 교회작품에서 보여지는 개인의 성향이 후기에 들어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희석되어 그 고유한 모습을 읽어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점은 상대적으로 짧은 근·현대건축역사에 흥미로운 논쟁거리를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개인의 건축관이 대규모 조직에 어떻게 유지 및 발휘되는지?, 김정철선생과 김정식선생의 디자인 취향과 입장이 어떻게 다르고 실제 어떤식으로 이견이 조정되는지?, 조직의 거대화로 필연적인 관리자의 역할이 요구되는데, 실제 설계에 어느정도 관여하는지?, 등은 시간을 두고 논의 되어야 할 논쟁거리라 할 수 있다.
김정철선생은 67년 7명의 정림건축으로 출발 오늘날 한국의 유수의 우수한 건축집단으로 자리잡았다. 초기의 작품에서는 개성과 성향이 분명히 보이나, 이후 대규모 작품에서는 이러한 성향이 조금은 모호해졌다고 볼 수 있다.
김정철선생의 건축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설명될 수 있는데, 첫째는 교회이고 둘째는 은행을 포함한 사무소 건물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일련의 교회작품에서 김정철선생의 건축가로서 특성을 읽을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교회라는 주제가 보다 건축적인 작가의 의도를 읽기 쉬운 면도 있지만, 김정철선생의 신앙과 관계된 지속적 관심이 이러한 특성을 읽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은행작품과 사무소건물에서는 개척자적인 위치를 점해왔다고 본다. 공간의 구성과 새로운 공법과 재료의 사용, 그리고 기술개발에 적극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은행본점의 경우 정림건축의 디자인이 한국의 은행건축의 하나의 전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김정철선생을 한국의 근·현대건축이라는 지형에서의 위치는 종합건축의 이천승선생과 김정수선생의 맥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리매김의 근거로 우선, 김정철선생은 종합건축에서 건축실무를 익혔다는 사실이다. 다음은 김정철선생의 건축활동에서 보여준 작품의 성향, 대규모 설계조직에 의한 작품활동등은 종합건축의 영향이 확인된다.
김정철선생의 건축은 기본적 사고의 틀을 합리주의적 성향의 실용주의로 볼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후기 꼬르뷔제적인 조형적 예술성을 표현해가는 성향이라기 보다는 그로피우스나 미스에 더 가까운 합리주의적 근대건축의 디자인 경향을 보인다. 즉, 인간존재의 불가해적인 측면을 나름대로 풀이하는 예술지향적 건축가에 비해 사회문제를 기술력으로 해결하려는 기술지향적인 건축가로 분류 될 수 있는 종합건축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 합리적 의사결정과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정림건축이 성공할 수 있는 주요한 아유가 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상황은 온건, 보수적인 성향의 디자인을 결과하는 요인이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재료나 공법의 사용에서는 혁신적이라 할 만큼 능동적이었는데, 이 부분은 당시의 우리 사회 및 건축현실로 볼 때, 상당히 중요한 시도와 특징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결국, 한국의 사회가 요구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과 신뢰를 획득할 수 있었던 김정철선생은 한국의 근·현대건축에서 누구도 누려보기 쉽지않은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60년대의 실용적인 디자인에서 ’70년대에 들어서면, 김정철선생의 작품은 조형을 의식한 디자인으로 조심스런 변화를 보인다. 이러한 변화가 ‘8-90년에 들어서면, 해외건축에 영향을 의식한 대담한 변화양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지금은 하나의 설계조직이라 보기 힘들정도의 다양한 모습의 작품들이 표출되었다.
이렇게 보면, ‘이런 다양한 작품들이 하나의 건축이데올리기에 근거한 작품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또 정림건축의 경우에는 대규모 조직을 지향하면 필연적으로 분업화, 전문화를 결과하는데, 이러한 분화는 각 소규모의 집단의 취향과 색깔이 다양해 질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이렇게 보면, ‘김정철선생의 70년대의 합리주의적 성향이라는 틀 속에 이러한 다양성이 어떤 방식으로 포용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김정철선생과 정림건축집단에 대한 비평을 해보자. 한국현대사회는 전근대와 근대 그리고 후기산업사회로의 이행이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필연적으로 적응에 많은 갈등을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림건축의 대규모조직화는 시대적 요구에 대한 나름의 적응방식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정림집단은 여타의 세계적 설계집단과는 달리 다양한 성격의 집단의 혼재된 향상을 띠고 있다.
정림이라는 건축집단은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위한 나름의 내부적 실험을 통하여 정림만의 독특한 색깔을 확보해냈다면, 가장 한국적인 디자인으로 동남아 및 중국 시장을 가시화된 시장에서 경쟁력있는 국제적 설계집단으로 성장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셋. 청중과의 질의 응답

1. 정림건축에는 다양한 작품경향이 있지만, 일관된 흐름이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 및바탕에 흐르는 것은 개척자적인 적극적인 사고방식, 새로움에 대한 추구 등일 것이다.
그리고 정림건축의 최근의 조직개편은 변화하는 상황의 대처 특히, 디자인이라는 면에서 상당히 유연하게 대처해 갈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하지만, 토탈환경을 추구하는 정림건축의 목표에서는 여타 분야 실시설계, 엔지니어링의 취약은 결국 토탈환경이라는 목표를 위협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부분에 대한 대처방안은 무엇인가?
김: 정림건축은 초기부터 조직설계를 지향해왔다. 이것은 정림의 작품의 수준을 높이고 시대를 앞서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조직설계는 여러 전문분야의 능력있는 사람들을 요구한다. 지금까지의 정림건축은 작품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기준이였다. 하지만, 오늘날 정림건축은 여기에 또다른 중요한 가치기준 하나를 더 두려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효율성, 경제성이다. 사실 이부분에 대하여 지금까지 많은 건축가들이 터부시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림이라는 조직은 이제 어느 한사람의 소유물이라기 보다는 자라는 젊은 건축가에게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자신의 건축세계를 실현해가는 공동의 장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정림건축은 이제 변화하는 시장환경 속에서 조직의 영속성을 확보할 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실행해가고 있다. 조직의 영속성을 위한 물적 기반은 중요한 문제이며, 더이상 경제성, 효율성에 대한 고려가 터부시될 수 만은 없을 것이다.

2. 정림건축의 작품은, 일정 정도 능력을 갖춘 건축가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모범답안적인 성격의 작품이라는 느낌이다. 물론, 대규모 프로젝트이기에 개인의 디자인 의도를 강하게 표출하기가 쉽지는 않았겠지만, 도전적인 시도가 있었으면하는 아쉬움이 있다.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경륜을 바탕으로 자신이 핸들링할 수 있는 프로젝트만을 한정적으로 수행한다면 후배건축가들에게 모범이 되지 않을까?
김: 정림건축은 한 개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도되는 디자인 프로세스라기보다는 팀의 토론과 합의를 통한 문제해결방식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 젊은 건축가에게 디자인에 대한 권한을 위임하고, 경륜을 바탕으로한 비평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 보다 좋은 작품, 사회가 필요로 하는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이 정림의 디자인 프로세스이다.
정림건축은 건축주로부터 신뢰받는 건축을 추구한다. 합리적인 디자인은 사회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는 것이다. 건축이 건축가 개인의 예술성, 독자성, 특이성을 표현해내는 기회라기보다는 건축주와 건축가가 공유하는 가치를 표출하는 작업이라고 믿기에 건강하고 균형된 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나의 역할은 작품에 직접적인 관여를 피하고 젊은 건축가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에 부족한 것을 메우고, 보다 좋은 작품을 위한 비평등을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젊은 건축가가 꿈을 키우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의 결과로 정림건축의 최근 작품이 다양한 경향은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와 시대가 요구하는 건축에 대한 정림의 목표는 변함이 없다. 이제 정림건축의 젊은 건축가들이 상당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정림의 디자인이 젊어지고 있다.

3. 정림건축은 현상설계로 성장한 설계사무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몇십년 간의 현상설계용 건물이 결과한 도시의 모습의 어떠한가? 결국, 자기과용 건물들이 십년간의 현상설계용 건물들이 도시를 메우고 있고, 도시는 더욱 혼란스러운 풍경으로 전략하지는 않았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김정철 선생의 도시에 대한 생각 또는 기존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김: 이 문제는 사실 나도 요즈음 같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문제이다. 정림의 초기 현상설계 당선이 성격이나 내용이 없이 모양으로만 이루어졌다고 생각지 않는다. 당시의 우리건축현실을 감안해 본다면, 정림 작품은 기능에 대한 완벽한 해결과 디자인의 우수성이 당선의 충분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도시를 삶의 터전으로 가꾸어 가려는 정림의 건축적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특히, 최근의 현상설계에서 이러한 노력은 과감하게 표출되었지만, 대부분 무의로 돌아갔다. 이러한 시도가 우리의 건축현실 속에는 힘겨운 결단이지만, 정림건축은 계속해 갈 것이다. 우리의 삶의 터전에 대한 고민은 국가와 사회 그리고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건축가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정림건축은 지금까지 건축주와의 관계에서 적극적인 설득과 극한 상황에서는 프로젝트를 거부하는 등의 이 땅의 건축문화발전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나는 이제 우리의 건축을 위해 많은 인재가 요구되고 이러한 인재는 가꾸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왜냐하면, 우리의 건축풍토가 너무나 척박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한 건축가를 만들기 위한 국가나 지역사회의 건축가에 대한 애정과 노력은 너무 다름은 알고 있다. 이제 정림건축은 한국의 젊은 건축가를 위한 좋은 마당이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한국건축의 미래에 대하여 정림과 내가 짊어지고 갈 짐이라고 생각한다.

자료 및 정보 출처

《대청마루 정림건축 설계정보지 제5호》, 1994, 11~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