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서의 건축 [인터뷰] 월간 건축문화 220호

김정철 | 건축문화의 해 조직위원장
정림건축 대표회장


인터뷰어: 이보경

새로이 건축문화의 해 조직위원장이 된 정림건축의 김정철 회장을 만났다. 건축문화의 해를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 지에 대해 들어본다.

찰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어도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습니다.
창과 문을 만들어도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물의 存在(존재)가 비어있으므로 쓸모가 있습니다.
老子(노자)의 道德經(도덕경)

“建築(건축)이란 쓸 용(用)이 전제하고 있는 독특한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앉을 수 없는 의자가 家具(가구)가 아니듯이 살기가 불편한 집은 建築(건축)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實用性(실용성)이 갖추어져야 건축으로서 가치가 있습니다. 공간은 그 공간이 갖추어야 할 성격이 있으며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건축가들은 이용자들에게 공간의 체험을 통하여 이미지를 전달하려 많은 노력을 합니다. 공간의 비례, 빛의 變化(변화), 材料(재료)들의 텍스처(색상, 才質(재질))등을 통하여 많은 이야기와 이미지를 나타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人間(인간)의 존엄성을 위하여 人間을 사랑하기 때문에 建築(건축)과 都市(도시)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건축에 대한 시각이 좋지 않은 상황이며, 건축계 내부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건축문화의 해 조직위원장을 맡으셨습니다. 어떻게 인사를 드려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건축문화의 해로 지정된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가시적인 활동들도 없었고, 국민들에게 홍보도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많은 준비가 있었기 때문에, 전임자의 생각들을 알리고 잘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문화의 해를 단순히 올 한 해의 행사로 본다면 저는 그것 외에 별로 할 일이 없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건축문화를 정립하는 일은 올 한 해의 문제가 아닙니다. 따라서 건축계의 건축을 문화로 인식시키기 위한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야 합니다. 즉 올해의 행사들이 기반이 되어 국민들에게도 건축이 문화로 인식되고 삶의 터전으로, 문화의 바탕으로 여겨질 수 있게 하려는 것이지요. 제 임기가 비록 후반기에 국한되지만 이러한 생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건축을 문화로 이해시키기 위해, 일반인들의 참여도 넓히고, 인식도 넓히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문화의 해”라는 이름 하에 이루어지는 행사는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건축은 이런 행사들을 기반으로 시작을 해야된다는 말씀이군요.
기획된 사업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우리가 준비한 기획들을 바탕으로 건축이 더욱 쉽게 이해되도록 하는 일이 더욱더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3개의 단체로 나누어진 건축계가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건축이 대중에 잘 이해되고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선 건축계가 정말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데 올해를 시작으로 이런 부분들에 대해 더 생각하고 더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후반기에는 이제까지 준비해온 많은 은행사들이 차츰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행사를 위해 준비한 자료들을 잘 정리하여 보존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외국의 경우는 건축박물관 등이 있어서 그런 자료들을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조직위원회에서도 계획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입장에서 건축박물관을 짓는 것은 큰 사업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구체적인 단계는 아닙니다. 그러나 정보 데이터 시설을 구축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 많은 건축가들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행사들을 맡은 각 위원회 측에서의 이 부분에 대한 노력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건 좀 다른 질문입니다만 건축문화의 해가 끝났을 때, 대중들이 건축을 이해하는 정도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요? 건축을 문화로 인식하는 점에서 말입니다. 왜냐하면 대중들에게 건축계는 부정부패가 많이 일어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건축문화의 해라는 올해에도 건축계의 불미스러운 일들이 더 많이 드러나기도 했고요. 어찌보면, 건축의 문제는 단순히 전문가 집단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집 하나를 짓는 것에 관련하여 건축가 자체의 문제보다도 사회 자체의 인식이 잘못(?) 되었다고 할까요?
건축이라는 것은 삶을 담는 그릇이 아니겠습니까? 삶의 모든 행위 자체가 문화일진대 그것을 담는 그릇으로서 건축 역시 문화라 할 수 있지요. 의·식·주라는 인간 삶의 필수적 요건에 있어 주에 속하는 건축은 바로 삶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건축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이고 굴절된 시각을 말씀하셨는데, 제가 보기에 건축설계작업은 그 자체로서는 무척 순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물리적으로 완수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보통은 짓는 행위 전체가 건축으로 인식 되어있지만, 건축주가 책임져야 할 부분과 설계자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 또 시공자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들이 명확하게 인식되어 있지 않고 때때로 다른 책임이 설계자에게 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공공성의 문제, 윤리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설계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느 건물을 지을 때 사업주 역시 그러한 문제들, 즉 그 건물이 대중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단순히 개인의 소유물이 아님을 인식시켜야 하는 것이지요. 기능도 물론이거니와 사회적으로, 도시적으로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축가는 어떤 건축을 만들어야 하는 것에 대해 건축주와 충분한 대화를 하고 공공성이나 사회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미 외국에서도 행해지고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할 때 단독으로 작업을 처리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 참여라든지 다른 부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즉 누군가 “이런 것을 만들고 싶다”라고 했을 때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교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이 최초에는 전문적인 작업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대중에게 참여하는 부분을 넓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만 그러한 가운데 건축가가 가지고 있는 경험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건축에 대한 의식이 낮습니다. 사람들이 건축을 대할 때 이것이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삶에 정말 중요한 부분인 것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물론 건축가들도 일반 대중에게 쉽게 이야기하는 방법을 자꾸 시도해야겠습니다. 예를 들어 계획된 안을 3차원적인 방식으로 건축주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좋은 방법입니다.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방법들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전문적인 어려운 이야기보다는 삶의 일부로 인식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건축은 단순히 공간적인 의미뿐 아니라 그 건물에 사는 사람의 인성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공간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좋은 인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점에서 건축엑스포에 좀 더 많은 관심과 참여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왜냐하면, 건축문화엑스포는 모델하우스 등 삶과 밀접한 건축이 소개되고 이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이 모색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 건축이 있도록 함으로써 대중들에게 건축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이지요. 제가 있는 사무실 외벽에 붙인 건축문화의 해 엠블럼도 그런 목적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건축문화의 해를 위한 행사와 관련해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도 있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행사직원들 외에 건축계에 종사하는 일반 설계사무소 직원이나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혹은 해야하는 무엇을 계획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사실 행사 벌이는 것보다는 각자의 위치와 행위들이 중요한 것이지요. 행사위주, 성과위주의 사업보다는 봉사하는 자세로 스스로가 노력해야 할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도 건축가의 철학, 윤리 등을 가르쳐서 건축가로서의 윤리의식을 갖게 만드는 것 등입니다. 저는 그런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려버렸습니다. 젊은 건축인들이 참여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참여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후원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젊은 건축가들도 대중들에게 건축을 홍보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언론을 잘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쉬운 글을 통해 건축을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중이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어필하는 것이지요.

젊은 건축가들은 돋보여야 한다는 생각, 혹은 적은 경험 때문에 자꾸 어려운 말들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원로분들은 많은 경험으로 어려운 말을 안해도 정말 필요한 말씀들을 해주시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원로분들이 활동하는 장이 너무 적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직위원장으로서 우리 건축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건축인들에게 드려주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건축에 대한 자부심과 꿈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입니다. 사회적인 비난이나 오해를 해소시키지 않으면 건축은 자기 자신에게도 힘든 일이 되겠지요. 건축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생각과 실천이 건축문화의 해를 더욱더 의미 있게 만들 것이며, 이 시대에 건축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해가기 위한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료 및 정보 출처

《월간 건축문화 220호》, [인터뷰] 문화로서의 건축, 김정철(인터뷰어: 이보경), 1999년 9월, 62~64쪽.